[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지난 1948년 전남 여수·순천에서 발생한 '여순사건' 당시 반군에 협조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개시결정이 처음으로 확정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1일 고 이모씨 등에 대한 재심청구사건에서 대법관 9대4 의견으로 재심사유와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하고 검사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기록에 따르면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에 대한 체포·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고, 피고인들의 연행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의 진술도 이에 부합한다"며 "피고인들을 체포·감금한 군경이 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판결서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대법원판례에 따르면 판결서가 판결 그 자체인 것은 아니므로 판결서가 작성되지 않았거나 작성된 후 없었더라도 판결이 선고된 이상 판결은 성립한 것이고, '유죄 확정판결'인 이상 재심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판결서 원본은 국가가 작성하고 보존할 책임이 있다.이번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선고·확정돼 집행된 사실은 판결 내용과 피고인들의 이름 등이 기재된 판결집행명령서 등으로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여순사건 당시 선포된 계엄령과 그 계엄령 선포에 따라 설치된 군법회의에 대해 위헌·위법 논란이 있으나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법작용으로서 군법회의를 통해 판결이 선고된 이상 판결이 당연무효가 되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판결 성립은 인정된다"며 "재심을 통한 구제를 긍정하는 것이 재심제도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재심사유가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는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재심사유로 규정하되 그 증명방법을 확정판결만으로 제한했고, 제422조에서 정한 '확정판결을 대신하는 증명'도 그 직무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만큼 증명돼야 하나 이번 사건은 위와 같은 증명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기존 판결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고, 재심은 가능하지 않으며 타당하지도 않다는 파기환송 의견을 냈다.

두 대법관은 "이번 사건 재판이 실제로 있었는지, 피고인들이 사형판결의 집행으로 사망한 것이 사실인지 의문이고 설령 재판이 있었다고 보더라도 그 절차적 하자가 매우 중대해 규범적 의미에서는 재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며 "재심대상판결의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현재 그 공소사실을 알 수 없는 이상 형사재판은 불가능하고 재심도 불가능하다.공소사실을 알 수 없다면 재심사유의 존부도 판단할 수 없고 재심을 허용하더라도 충분한 구제가 될 지 의문이므로 재심은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씨 등 3명은 1948년 10월 반란군을 도왔다는 혐의로 순천 지역을 탈환한 국군에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 주둔 14연대가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해 출동하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 명령을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정부 진압군이 14연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등 다수가 희생됐다.

여순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48년 10월말부터 1950년 2월까지 순천지역에서 민간인 438명이 군·경찰에 무리하게 연행돼 살해당했다고 인정했다.

이후 유족들은 군과 경찰이 민간인을 내란 혐의로 불법 감금했다며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1·2심은 "이씨 등 판결문에 구체적인 범죄사실 내용과 증거 요지가 쓰이지 않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영장발부를 미뤄 판단할만한 자료가 없어 이씨 등은 법원이 발부한 사전·사후 구속영장 없이 체포·구속됐다고 봐야 한다"며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이씨 등의 재심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여순사건 재심 인용 결정에 대한 재항고 등 전원합의체 판결을 위해 앉아 있다.

사진/뉴시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