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525호. 푸른 수의 차림으로 법정에 선 광역버스 운전기사 김모(51)씨는 잔뜩 긴장한 듯 어깨를 제대로 펴지 못했다.

심리를 맡은 이 법원 형사10단독 이종우 부장판사가 서류를 들여다보는 동안 김씨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김씨는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경부고속도로 서울방면 415.1㎞ 지점 신양재나들목을 달리던 중 밀려오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7중 추돌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50대 부부가 숨지고 16명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검·경 조사 과정에서 김씨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했다.

검찰은 김씨에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했다.

그러나 이 부장판사는 이날 선뜻 판결을 선고하지 못했다.

당시 사고로 중상해를 입은 피해자 A씨가 써준 합의서를 김씨가 뒤늦게 제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합의서에 "최대한 선처 바란다"는 내용 외에 없다는 것.이 부장판사는 "일반적으로 합의서에는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어야 하는데 해당 합의서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난감해했다.

이어 "중상해 교통사고 범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법원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라며 "해당 합의서의 내용이 ‘최대한 가볍게 처벌해달라’는 취지인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건지 모호하다"고 말했다.

반의사 불벌죄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형사 소추를 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이 부장판사는 합의서를 한동안 들여다보며 검사를 향해 "문맥이 좀 애매하게 돼 있지 않냐"며 재차 의견을 묻기도 했다.

결국 이 부장판사는 이날 예정된 판결을 선고하지 못했다.

법원은 김씨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을 이달 22일 다시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