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정부 對공산권 외교서 출발/냉전해체 흐름 속 소련·중국과 수교/박근혜정부의 유라시아이니셔티브/대북 독자제재로 되레 관계 악화북방정책이라는 명칭은 1988년 노태우정부 출범 후 추진된 대(對)공산권 외교정책에서 출발한다.

노태우정부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추진이라는 냉전 해체의 흐름 속에서 북방정책이라는 국가전략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1990년 6월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고, 그해 10월 소련과의 국교가 수립되었다.

1992년 8월 24일에는 적성국 중국과도 국교를 맺었다.

노태우정부의 북방정책은 김영삼정부의 세계화정책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김영삼정부는 북방이라는 거시적 측면보다는 북한이라는 미시적 측면에서 획기적인 조치를 내놓기도 했다.

통일부 장관의 부총리급 격상과 진보학자(한완상 전 서울대 교수) 임명, 비전향 장기수 리인모 북송,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 추진 등이 그것이다.

당시 러시아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체제를 전환하던 혼란기여서 한·러 관계 발전은 답보상태였다.

진보정권인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는 각각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동북아평화협력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인 북방외교가 추진됐다.

김대중·노무현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높은 외교적 비중을 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가 △남북 동시수교국으로서 북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고 △유라시아대륙 진출의 관문이며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외교의 독자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러시아·CIS학과)는 13일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북방정책에 대해 "김대중정부는 러시아에 대해 거침없는 접근을 시도했고 노무현정부는 ‘문제가 없는 것이 문제’일 정도로 우호관계가 유지됐다"며 "주변 4강(미·중·러·일) 정상 중 노무현 대통령과 코드가 가장 잘 맞는 지도자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꼽히기도 했으며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제사회의 예상을 뒤엎고 유엔사무총장에 선출된 것도 한·러 정상 간 찰떡궁합 덕분으로 회자됐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는 각각 자원외교와 유라시아이니셔티브 정책을 추진했으나 북핵 문제와 미·러 갈등 속에서 전반적으로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유라시아이니셔티브는 유라시아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고 북한에 대한 개방을 유도해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방안이다.

2008년 러시아를 방문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남·북·러 가스관 사업 추진에 합의했으나 이후 진척이 없었다.

유라시아이니셔티브를 내걸었던 박근혜정부는 오히려 대북 독자제재를 통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러시아극동개발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 남·북·러 3각 물류사업을 좌초시켜 러시아 정부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