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부터 정쟁만 난무했다.

법원·검찰 등의 부실 행정·예산 낭비 점검을 해야 할 2017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는 'F학점'을 받았던 지난해와 데자뷔였다.

여야 의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여부를 둘러싼 공방전에만 몰두했다.

문재인 정부 국감 첫날인 12일, 대법원을 상대로 한 법사위에선 '적폐청산'이 핵심 화두였다.

국감 이전부터 올해 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불거진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법원 전산망 해킹 의혹 그리고 공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여부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여야 의원들은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국감 포문을 열었다.

이는 법원행정처가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판사들의 명단을 파악하고 관리했다는 의혹이다.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법사위 간사)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행정처 기획조정실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하자"고 제안했다.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이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법원행정처에서 블랙리스트 관리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진 심의관의 컴퓨터는 조사하지 않고 '사실무근'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핵심 물증에 대한 조사 없이 의혹을 마무리 지었다며 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에게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당사자가 사용하던 PC의 행방을 물었고, 김 처장은 "보관하고 있다"고 답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 규명을 위해 해당 PC에 대해 보존 조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여야 간사가 합의해 현장조사 실시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법사위 간사)은 "사법권 침해 우려가 있다"며 "협의는 하겠지만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권 위원장은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의 의견도 물었다.

상임위의 피감기관 현장조사는 국감에서 필요한 경우 상임위가 의결을 거쳐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기관은 이를 거부할 수 있다.

김 처장은 "컴퓨터 추가 조사 부분은 대법원장이 여러 법관회의, 진상조사위, 대법관 의견 등을 두루 들어서 다시 결정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가까운 시일 내에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국군 사이버사령부가 지난 2014년 민간 해킹조직을 통해 법원 등의 전산망을 해킹했다는 '국군 사이버사 해킹' 의혹이 쟁점으로 부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의원,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 등은 대법원에 법원 전산망 해킹을 통한 정보유출 실태, 해커 추적현황, 사후조치 등에 자료를 요구했다.

대법원 측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순항하는 듯했던 법사위 국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여부'를 둘러싼 여야 의원들의 대치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여부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되고 있어 이날 진행된 대법원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은 오는 16일 자정을 기점으로 구속기간이 만료된다.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의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여부 결정은 13일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입을 모아 "구속영장 발부는 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김진태 의원은 "구속 사건은 원칙적으로 6개월 이내에 끝내야 하는데 별건으로 피고인을 구속해 심리를 더 하겠다는 건 편법"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여상규 의원도 "구속영장과 다른 공소사실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영장을 재발부해 구속 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에 어긋난다"며 "박 전 대통령은 형소법에서 1심 구속기간으로 정하고 있는 6개월이 지나면 석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춘석 의원은 보수당 의원들의 이 같은 주장에 "정치권이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연장해라, 말라고 국감에서 얘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반인과 대통령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금태섭 의원도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판에 세 차례 불출석하고, 공범 재판 증인 출석도 거부해 구인영장이 발부된 사실을 언급하며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도 한국당 의원들의 주장에 맞불을 놨다.

박 의원은 "재판장이 법대로 하라면 하는 것"이라며 "자꾸 구속하지 말고 석방하라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박 전 대통령이 천인공노할 일을 해서 법대로 구속이 연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한국당 여상규 의원은 "과연 천인공노할 일을 저질렀는지 심리를 해 봐야 한다"며 "석방 여부는 양형에 참작할 문제고 구속기한을 더 늘릴 수 있는지는 다른 이야기다.

형소법 법리대로 법원이 결정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소영 법원행정처장은 이에 대해 "재판부가 판단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 의견을 내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다만 미국과 영국의 사례를 토대로 "일반인에 대해서도 사건이 복잡한 경우 구속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금 의원의 발언에 대해 "그런 걸로 안다"며 동의를 표했다.

한편 법사위는 이날부터 31일까지 총 73개 피감기관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다.

오는 13일 헌법재판소, 16일 법무부, 20일 서울고등법원(중앙지법 포함), 23일 서울고등검찰청(중앙지검 포함), 27일 대검찰청 순이다.

이날 국감 흐름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13일 진행 예정인 헌재 국감도 '정쟁 국감'으로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국민의당 의원들이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직 유지에 반대해 '보이콧' 의사를 밝히고 있어 파행을 맞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