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전을 통해 본 한국 현대미술전’ 여는 오상길 서울현대미술연구소 소장근현대 한국미술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서구미술과의 ‘문화혼성’(cultural hybrid)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화혼성은 분쟁이나 교류 같은 정치사회적 변동 속에서 이뤄진다.

충격과 혼돈, 갈등을 거쳐 서서히 고유문화로 자리를 잡아간다.

마치 몽고의 침략이 남겼던 댕기머리와 색동저고리처럼. 서울현대미술연구소 오상길 소장은 ‘혼성’을 키워드로 한국미술의 자화상을 드러내려 한다.

그 속에 한국미술의 글로벌 경쟁력과 우월한 유전자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 미술의 경쟁력은 스토리라인의 소통에 있습니다.혼성이야말로 소통의 매개체입니다." 그는 한류를 이끌고 있는 K팝이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서구음악을 나름의 방식으로 혼성, 소화해 냄으로써 서구인들 물론,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비서구권에서도 열광하게 되는 이치다.

"문화는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입니다.우열이 있을 수 없습니다.오히려 교류와 혼성을 통해 풍성해지는 것이지요." 그는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문화콤플렉스는 극복의 대상이라 했다.

"일제강점기로 인한 문화단절이 가장 큰 요인이지요. 주체성이 사라지면서 짝퉁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됐지요. 허상과 같은 문화순혈주의로 도피를 하면서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한국문화는 유사 이래 대륙과 해양문화의 혼성을 통해 만들어졌음을 강조한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도 중국대륙문화를 흡수 소화해 낸 혼성문화의 위대함이라 했다.

어쩌면 대륙문화를 완결시킨 꼴이다.

그가 1949~81년 정부가 주최한 국내 최고 권위의 미술 공모전인 국전을 혼성의 관점에서 되돌아보는 전시 ‘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18일~11월2일 금보성아트센터)을 마련하는 이유는 뭘까. "시대적으로 국전에 참여했던 작가들만큼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문화혼성기에 내몰렸던 적은 없을 것입니다.시대적 고민을 안고 대안을 모색했던 작가들의 성취를 구체적으로 밝혀가기 위해 기획된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한국미술의 좌표설정, 다시말해서 한국미술의 글로벌 경쟁력과 유전자를 그 속에서 발견해 내려는 작업이라 할 수 있지요. 이는 작가는 물론 기획자, 미술사가들에게도 필요한 일입니다.더 나아가 미술시장의 신뢰를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는 그간 한국미술계의 민낯도 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미술을 문화혼성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일은 진정한 미술역사를 바라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역사 속의 개별 예술가들의 성취는 바로 한국미술의 가치이기도 하지요." 그는 20세기 한국미술을 서구미술의 역사개념에 기대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서구의 틀에 끼워 맞춰온 국내 주류 미술관들과 미술평론가, 미술사 전공자들의 시각에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요구된다고 했다.

한국미술의 역사를 서구미술의 틀을 빌려 진술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서구미술의 영향을 역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이 변화의 과정에 수반된 혼성성의 문화적 실체를 구체적으로 규명해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이런 접근은 제도와 미술운동 같은 사건과 집단적 현상에 집착해 ‘역사’와 ‘예술’의 가치를 논해야 할 미술의 역사를 사건사 또는 미술운동사로 전도시켜 왔던 입장들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그는 겸재와 단원의 회화적 진경산수를 거쳐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옥산 김옥진에 이르기까지의 궤적을 살펴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우리 전통회화의 높은 품격과 회화적 완성도가 동시대 서구미술에 대응할 만한 경쟁력 있는 한국미술로 평가할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한국미술의 방향성내지 나아갈 방향을 유추해 볼 수 있지요." 오상길 소장은 10여년 전부터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를 꾸준히 펴내고 있다.

현재까지 총 8권이 출간됐다.

서울현대미술연구소는 다음 달 24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국전으로 읽는 한국 현대미술’을 주제로 학술행사도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