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헌재소장 후보자→소장 대행→재판관.’올해 들어 8개월이 좀 넘는 기간 동안 김이수(64) 재판관이 겪은 호칭의 변화다.

평범한 한 명의 재판관이었던 그가 헌재소장을 대신하는 권한대행에 올랐다가 문재인 대통령 지명으로 헌재소장 후보자가 되었다가 국회의 임명동의안 부결 후에도 대행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새 헌재소장 취임에 맞춰 원래의 재판관으로 돌아갔다.

날짜로 계산하면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은지 꼭 256일 만에 그냥 재판관으로 복귀한 셈이다.

◆탄핵심판 직후 헌재소장 권한대행 뽑혀26일 헌재에 따르면 김 재판관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에 뽑힌 것은 약 8개월 전인 올해 3월14일의 일이다.

나흘 전인 3월10일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해 박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당시 헌재소장 권한대행이던 이정미 재판관이 선고 사흘 뒤인 3월13일 임기만료로 물러남에 따라 이튿날 재판관들이 회의를 열어 최선임 재판관인 김 재판관을 소장 권한대행으로 뽑은 것이다.

박한철 전 헌재소장도, 이정미 전 재판관도 모두 후임자 없이 물러남에 따라 헌재는 재판관이 정원(9명)보다 2명 적은 ‘7인체제’의 비정상으로 내몰렸다.

얼마 후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이 지명한 이선애 재판관이 취임하면서 가까스로 ‘8인체제’를 만들었지만 이렇게 위태위태한 헌재의 모습은 앞으로 김 재판관이 겪을 파란을 예고하는 듯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9일 만인 지난 5월19일 김 재판관을 제6대 헌재소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지명 발표 하루 전인 5월18일 문 대통령이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헌재소장 권한대행 자격으로 참석한 김 재판관과 나란히 서서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것이 화제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그에겐 ‘재판관’과 ‘소장 권한대행’ 외에 ‘소장 후보자’라는 새 직함이 붙어 다녔다.

보수야당이 과거 옛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당시 그가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낸 점을 들어 부정적 입장을 밝혔으나 그때만 해도 인준 절차가 순조롭게 이뤄지리란 전망이 우세했다.

◆인준안 부결 후 "권한대행도 사퇴" 압박6월7∼8일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만 해도 괜찮았던 분위기는 이후 문재인정부 초대 내각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 시비가 잇따라 일어나면서 차츰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차일피일 지연되는 와중에 검찰이 이명박·박근혜정부 주요 인사들을 타깃으로 한 적폐청산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정국은 더욱 급랭했다.

지난 9월2일 검찰이 김장겸 당시 MBC 사장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으면서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이 원만하게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사실상 물건너갔다.

국회는 9월11일 드디어 본회의를 열어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한 김 재판관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총 투표수 293표 중 찬성 145표, 반대 145표, 기권 1표, 무효 2표로 찬성이 과반에 이르지 못해 부결됐다.

당시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세계헌법재판회의 총회에 한국을 대표해 참석 중이던 김 재판관은 며칠 뒤 어두운 표정으로 귀국하며 "국회의 뜻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그의 여러 직함 중 ‘소장 후보자’는 이때 떨어져 나갔다.

야당은 김 재판관에게서 ‘소장 권한대행’ 호칭도 걷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 재판관들은 새 소장 후보자 지명이 곧 이뤄질 것으로 기대해 김 재판관이 당분간 계속 소장 권한대행을 맡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파란을 불러 일으켰다.

10월13일 헌재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는 김 재판관의 소장 권한대행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 의원들의 반발로 파행을 빚다가 결국 무산됐다.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소장 대행·후보자 돌고 돌아 재판관으로소장 권한대행 자격으로 법사위 의원들한테 인사하기 위해 국감장에 출석한 김 재판관은 한 마디 발언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퇴장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법사위원 중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앞으로 헌법을 고치면 헌재를 없애야 한다"는 극언까지 했다.

오죽하면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김 재판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김 재판관의 딱한 처지는 10월27일 청와대가 새 헌재소장 후보자로 이진성 재판관을 지명하며 겨우 면할 길이 열리게 됐다.

이 재판관이 약 1개월 걸린 국회 인준절차를 대과 없이 치르고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 임명동의안 가결로 정식 헌재소장에 취임하면서 비로소 김 재판관은 ‘소장 권한대행’ 직함을 떼어냈다.

본의와 무관하게 256일 동안 달고 다닌 지긋지긋한 꼬리표였다.

다시 평범한 재판부 구성원으로 돌아간 김 재판관은 낙태죄, 종교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등 헌재가 당면한 중요 사건들 심리에만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 재판관은 1976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육군 법무관 복무 후 판사로 임명돼 특허법원·서울고법 부장판사, 청주·인천·서울남부지법원장, 특허법원장, 사법연수원장을 지냈다.

사법연수원장 시절인 2012년 옛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추천으로 국회 몫 헌법재판관에 선출됐다.

2014년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내려진 통진당 위헌·해산 결정 당시 혼자서 해산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내 주목받았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