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그가 돌아온다!''세계의 대통령'으로 대한민국에 자긍심을 심어줬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12일 고국 땅을 밟는다.

하지만 반기문 전 총장의 귀국을 바로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더욱이 대선출마라는 그의 행보가 전전임 사무총장이었던 가나 출신 코피 아난 전 총장과 사뭇 대비된다.

반기문 전 총장과 코피 아난 전 총장 모두 재임 중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외신들은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해 '무능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코피 아난 전 총장도 마찬가지다.

비록 유엔 말단 전문직에서 사무총장까지 올라 유엔사정에 밝았지만 '친미 사무총장'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재임 기간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편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때 거센 불면증에 시달렸을 정도로 특히 심했다.

반기문 전 총장과 코피 아난 전 총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퇴임 후 확연히 다르다.

반기문 전 총장과 달리 코피 아난 전 총장은 퇴임 후 더 인정 받는 인물이 됐다.

그를 향하던 비판의 목소리도 잦아들었다.

결정적 계기는 대통령이다.

반기문 전 총장과 코피 아난 전 총장 모두 퇴임 후 자국에서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했다.

코피 아난 전 총장 또한 고국인 가나에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기회가 있었다.

2007년 임기를 마친 코피 아난 전 총장의 지지자들은 이듬해인 2008년 열리는 가나 대선에서 코피 아난 전 총장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가나 국내 정치와 거리를 뒀다.

퇴임 직후 스위스 제네바로 건너간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코피 아난 재단'을 세우고 유엔 사무총장 시절 이루지 못한 꿈에 도전했다.

재단의 슬로건은 '더 공평한, 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다.

코피 아난 전 총장은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다.

시리아 사태 때 유엔 특사로 파견됐고,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에 이어 '디 엘더스(The Elders)' 회장도 맡았다.

'디 엘더스'는 노벨평화상을 받았거나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가 있는 국제사회 원로들의 모임으로 지난해 기준으로 1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레바논 내전을 중재해 휴전을 이끈 라크다르 브라히미 전 알제리 외무장관과 데스몬드 투투 전 남아공 대주교, 인도 여성운동가 엘라 밧, 종속이론가로 유명한 페르난도 카르도수 전 브라질 대통령, 그라사 마셸 전 넬슨만델라 대통령 부인 등이 회원이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는 명예 회원이다.

정계에 몸담고 있는 한 인사는 정치란 무엇이냐는 필자의 물음에 아래와 같이 답했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관계. 적과 동지가 따로 없는 합종연횡이 횡횡하는 정글보다 더 한 곳.'올해 73세. 70여년 평생 외교관으로 쌓아온 명성과 명예를 걸고 반기문 전 총장은 청와대로 향하는 여정의 첫 발을 내딛었다.

물론 반기문 전 총장이 그간 이룬 업적과 혜안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대통합'을 이루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51대49'의 싸움이 될 냉혹한 대권가도에서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될 '상처뿐인 영광' 대신 좀 더 큰 꿈을 꿨으면 하는 아쉬움은 감출 수 없다.

퇴임 후 소외된 소수의 인권 신장과 기후변화의 심각성 및 대응의 시급성을 설파하는 등 '더 평등하고 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헌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기문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됐을 당시 많은 아이들이 '외교관이 되겠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며 이른바 '반기문 키즈'를 자처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제2의 반기문'을 꿈꾸는 미래 세대들이 있다.

외교관으로 시작해 외교부 장관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에 오른 반기문 전 총장의 앞으로 행보가 '반기문 키즈'들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