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前 대통령의 기나긴 하루 / 입술 꾹 다문 굳은 얼굴로 법정 직행 / 이재용 ‘7시간30분’ 기록 넘는 심문 / 오전·오후 두차례 휴정 선언 ‘이례적’ / 휴정시간엔 도시락 식사·휴식 취해 / 검찰로 이동 땐 검찰 차량에 탑승 / 서울중앙지검 10층서 초조한 대기'30일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생애에서 가장 긴 하루를 보냈다.

검찰 조사 때와는 달리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구속을 피하기 위해 장장 8시간40분에 걸쳐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1997년 영장심사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장 기록이다.

지난달 박영수 특별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영장실질심사 때의 7시간30분을 넘어선 것이다.

임시유치시설로 박근혜 전 대통령(가운데)이 30일 저녁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영장발부 여부를 기다리기 위해 여성 수사관들과 함께 검찰 차량을 타고 인근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향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이날 오전 10시20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4번 출입구 앞. 검은색 에쿠스 리무진 차량의 문이 열리고 ‘피의자’ 박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색 바지 정장 차림에 검은 구두를 신은 그는 평소와 같은 올림머리 상태였다.

그러나 입술을 꾹 다문 굳은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50여 걸음을 걸어 법원 청사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포토라인 옆에 100여명의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국민께 어떤 점이 송구한가요", "뇌물 혐의 인정하십니까", "세월호 인양 보며 무슨 생각 했나요" 등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 21일 검찰 출석 당시 차량에서 내려 잠시 멈춰 선 뒤 엷은 미소를 띤 것과 대조적이었다.

검찰 조사 때에는 포토라인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으나 이번에는 끝내 묵묵부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원 측 방호원 안내를 받아 보안검색대를 지난 뒤 계단을 이용해 한 층 위에 있는 법정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나 이용하지 않았다.

경호원 6∼7명이 박 전 대통령을 근접 경호했다.

곧이은 10시30분 99㎡(약 30평) 넓이의 서관 321호 법정에서 강부영(43·사법연수원 32기) 영장전담 판사 심리로 박 전 대통령 영장실질심사가 시작됐다.

심문은 비공개로 이뤄지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변호인만 함께 법정에 들어갔다.

경호원들은 법정 앞 복도에서 대기했다.

일반 형사재판과 달리 영장심사 법정은 피의자 좌석이 중앙에 마련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법대에서 4 떨어진 피의자석에 앉아 내내 강 판사와 마주 본 상태에서 심사를 받았다.

강 판사는 예우 차원에서 양해를 구하고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호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조사 때는 대통령님이라고 불렀다.

영장심사는 검찰 측에서 먼저 범죄사실 요지와 구속 필요성 등을 주장하고 이어 변호인단이 반박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재문기자강 판사는 오후 7시11분까지 이어진 영장심사 동안 두 차례 휴정을 선언했다.

일각에선 두 차례 휴정에 대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법원은 "심문이 길어지면 재판장 재량에 따라 휴정을 할 수 있다"며 일축했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 심사가 끝난 뒤 주어진 한 시간의 휴정을 이용해 법정 옆 대기실에서 변호인들과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휴식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휴정 직후 경호원들이 김밥집 상호가 찍힌 종이상자와 커피를 들고 321호 법정과 연결된 출입구로 잇따라 올라가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오후 4시 넘어 15분간 또 한 차례 휴정이 이뤄졌다.

영장실질심사는 통상 길어도 3∼4시간을 넘지 않아 도중에 휴정을 하는 것은 흔치 않다.

다만 지난달 구속된 이 부회장의 경우 두 번째 영장심사가 7시간30분간 이어지면서 한 차례 20분간 휴정한 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강 판사가 주요 혐의에 대한 소명을 요구하자 결백을 호소하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특히 최대 쟁점인 뇌물 등의 범죄사실을 반박할 때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판사는 심사가 끝난 뒤 박 전 대통령의 유치장소를 ‘서울중앙지검 내 유치시설’로 정했다.

박 전 대통령 검찰 출석 당시 휴게실로 사용했던 1002호실이 임시 유치시설로 마련됐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소환조사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주로 쓰는 1001호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1002호실은 1001호 조사실과 연결된 방으로 침대, 책상 등이 마련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을 나설 때도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법원에 출석할 때는 청와대 경호실이 제공한 승용차를 이용했지만 검찰로 이동할 때는 검찰 차량에 탑승했다.

박 전 대통령을 배려해 옆 자리에는 여성 수사관이 앉았다.

차량은 법원에서 300m 떨어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한 뒤 지하 주차장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1002호실로 올라갔다.

이후 자신의 운명을 가를 법원의 결정에 대한 초조한 기다림에 들어갔다.

한편 이날 서울중앙지법은 종일 긴장감 속에 최고 수준의 경비 태세를 갖췄다.

법원은 청사 내부 보안과 질서 유지를 위해 심문이 진행된 321호 법정이 있는 서관을 중심으로 취재진 출입을 통제했다.

사전에 허가된 비표를 받은 취재진만 출입이 허용됐다.

박 전 대통령 심문이 진행되는 동안엔 법정 주변 3층 통로까지 경찰 병력이 배치됐다.

321호 법정 근처에 있는 319호 법정도 통상 영장심사가 열리지만 해당 층의 보안을 위해 다른 법정으로 옮겨 심사를 진행했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 출석에 대비해 전날 오후 6시30분부터 정문을 전면 폐쇄했다.

법원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심사를 마치고 청사를 빠져 나갈 때까지 청사 북동쪽에 있는 서울회생법원 쪽 입구로만 차량의 진·출입을 허용했다.

청사 주변에는 경찰 24개 중대 1920명의 병력이 배치돼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중앙지검도 영장심사 후 박 전 대통령이 검찰청에 대기할 것에 대비해 이날 오전부터 청사 본관에 외부인 출입을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