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링~'시끄럽게 울어대는 자명종이 6일 새벽 3시 50분을 알렸다.

충혈된 눈을 비비면서도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밖에 나가보니 제법 굵직한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시각, 택시를 타고 사진기자 선배와 약속한 장소로 이동했다.

택시 안, 차 안의 정적을 먼저 깼다.

얼핏 50대로 보이는 기사분에게 "염두에 두고 있는 대선 후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 똑같은 놈들 아닙니까?"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에는 콕 집어 물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기사분은 "말을 시원시원하게 하는데…글쎄요. 대통령이 함부로 말하고 입이 가벼워서 되겠어요?"라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택시는 쏜살같이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고, 서해안고속도로 초입인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선배와 만났다.

먼저 운전대를 잡고 이날 취재의 목적지인 광주로 향했다.

'나의 바늘' 홍 후보가 이날 '적진의 심장'인 광주를 찾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홍 후보가 호남을 방문하는 일정은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주는 워낙 진보 진영의 지지층이 두꺼운 곳이라 한국당 대선 후보를 열렬히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홍트럼프' 홍 후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꽤 많이 운전한 것 같은데 내비게이션에상으로는 아직도 200km가 남았다.

짧은 한숨이 입가로 새어나왔다.

게다가 안개마저 짙게 껴 더 힘들게 느껴졌다.

'광주야…넌 왜 이렇게 먼 것이냐.' 선거는 상당한 체력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홍 후보의 첫 일정은 광주 북구 운정동의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 참배다.

이곳에 도착한 것은 오전 9시. 가랑비가 내렸고 뿌연 안개가 주변의 산을 뒤덮었다.

아주 조용하고 한산했다.

보통 지지자나 환영하는 시민들이 더러 있게 마련인데, 경호원과 묘역 관계자들만 보였다.

50분쯤 지나 홍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민주 항쟁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참배를 마친 뒤 방명록을 작성하는 홍 후보는 '멸사봉공'의 '죽을 사(死)'를 썼다 수행팀의 지적에 '사사로울 사(私)'로 바꿔 다시 썼다.

그러고보니 지난번 현충원 참배 당시에도 방명록에 '필사즉생'을 한문으로 썼다.

한문을 참 좋아한다.

홍 후보는 한자를 잘못 쓴 것과 관련해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설명했다.

"이분들이 죽음으로서 항거했기 때문에 죽을 사자를 썼는데 다시 쓰라고 해서 사사로울 사자를 썼다.

" 그러면서 "기자 여러분이 그 뜻을 판단해달라"고 했다.

본인은 알고 있는 '답'을 묘한 뉘앙스를 풍기며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답변이라…. 정치 내공이 느껴졌다.

동시에 답을 알고 싶은 마음에 '그냥 솔직히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홍 후보가 민주묘지를 처음 방문했다는 것도 적잖게 놀랐다.

당 대표도 지냈고 매년 공식 행사가 열리는 만큼 첫 방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홍 후보는 2011년 대표 시절 12·6 선거와 디도스(DDos) 사태로 지방 올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처음 오게 된 것도 사과했다.

홍 후보에게는 미안하지만 변명처럼 들렸다.

'언제든 참배할 마음만 있었다면 충분히 올 수 있었지 않았겠나'라는 생각에서다.

홍 후보는 기자들과 만남을 마치고 오전 11시부터 시작하는 호남·제주 선대위 발대식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마지막까지 홍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불만을 터트리는 시민도 없었다.

어떤 연예인은 '악플'보다 '무플'이 더 아프다고 했는데 말이다.

사정상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홍 후보에 이어 묘역을 참배하는 것까지 보게 됐다.

이상하게도 홍 후보가 자리를 떠난 이후 우산을 쓴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홍 후보와 문 후보에 대한 호남 민심의 차이를 실감했다.

기사를 마감하는 동안 멀리서 '님을 위한 행진곡' 노래가 귓등을 때렸다.

안개와 비 때문인지 비장하다기보다는 구슬프게 들렸다.

전통적으로 호남은 보수당 지지층이 매우 얇다.

그렇기에 민심의 격차는 충분히 예상했다.

그래서일까? 홍 후보 광주 일정에는 전통시장 방문이 없었다.

최종 후보로 선출된 이후 대구 서문시장과 칠성시장, 부산 부전시장, 울산 수암시장을 들렀다.

광주 일정 이후 대전에서는 중앙시장을 찾았다.

유일하게 '불모지' 광주만 쏙 빠졌다.

여러 일정을 소화하기에 시간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 시민과 만나는 일정이 없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단히 잠긴 빗장을 풀기 어렵더라도 문을 두드리면 민심이 흔들릴 수도 있는데 말이다.

호남이 홍 후보를 바라지 않은 것인지, 홍 후보가 타 지역에 비해 호남에 공을 들이지 않은 것일지 모를 일이다.

다만 홍 후보와 문 후보에 대한 호남 민심의 차이는 피부로 느껴질 만큼 뚜렷했다.

홍 후보는 "광주지검에 근무한 1991년 3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년 5개월 동안 광주시민이었다.

1981년 5월부터 그해 7월까지 전북도민이었다"며 호남과 인연을 강조했지만, 갈 길이 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