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청량한 거문고 소리 낸다하여 ‘금정산 琴井山’
5. 도전리(道田里)▣ 도전(道田)◎ 동명의 유래도전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마암면으로 개편되면서 도동과 용전의 이름을 따서 도전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일명 나분다리(羅紛橋)로 부르기도 한다.

◎ 마을의 형성마을의 형성 연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마을 어른들의 전언에 의하면 지금부터 약 300여년 전에 이곳에 광천안씨(安氏)와 함안조씨(趙氏)가 정착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그 뒤에 김해허씨(許氏), 진양강씨(姜氏), 풍천노씨(盧氏), 달성배씨(裵氏), 광산김씨(金氏) 등 여러 성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나분다리에 얽힌 전설옛날 이 고을에 한 도령이 살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어찌나 영리한지 책이란 책은 모조리 외우고 주역을 통달하여 세상의 모든 일을 훤히 깨닫게 되었다.

이 도령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정자를 짓고 밤마다 별과 달을 벗삼아 책을 읽고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읊기도 하였다.

이 때 하늘나라 옥황상제가 계신 천상에 한 선녀가 있었는데 밤마다 들려오는 도령의 책 읽는 소리에 반해 호기심이 생겨 달마다 보름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보름밤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도령이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선녀는 비단가루로 된 사다리를 땅으로 내리우고는 하늘을 가로질러 내려왔다.

마침 이때 정자에서는 젊은 도령이 눈을 지긋이 감고 풍류에 취해 있는게 아닌가. 선녀는 밤새도록 도령과 이야기를 나누다 새벽이 되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또 그 다음 보름달이 뜨는 밤이 또 내려왔다.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는 보름밤이면 선녀가 인간 세상에 내려가 인간과 놀다온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못 내려가도록 사다리끈을 잘라 버리게 하였다.

다음 보름날 달밤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령은 선녀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빛이 번쩍하더니 선녀가 항상 타고 내려오던 사다리 줄이 끊어져 철썩 떨어지더니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비단가루로 된 사다리는 정자 앞에 흐르는 개울을 연결하는 다리로 변해 버리고 선녀는 땅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되었다.

이 안타까운 마음을 대변하는 듯 그때부터 이 다리는 나분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마을명도 ‘나분다리’라 부르고 있다.

▣ 기전(基田)◎ 동명의 유래기전마을은 원래 도동(道洞)이라 하였는데 1955년 행정구역 조정 시 도전리를 분동(행정마을로) 하면서 마을명을 기전으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기전마을은 언제부터 마을이 형성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성씨는 입촌 연대를 살펴보면 1800년대를 전후하여 양천허씨, 달성배씨, 전주최씨, 진양정씨가 입촌하였고 그 뒤에 칠원제씨, 김해허씨 등 여러 성씨가 입촌하여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재실과 효행비◇ 재실 : 양천허씨 문중의 재실인 도양재(道陽齋)가 있다.

◇ 효행비 : 달성배씨 부인 창원정씨(丁氏)의 효행비가 마을 입구에 있다.

◎ 지명 일화◇ 금정산(琴井山)과 기우제마을 남쪽으로 높이 솟아있는 금정산(해발 318.8m)은 물이 많아 굴 속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항상 청량한 거문고 소리와 같이 울려퍼진다고 하여 금정산이라 부르고 있으며, 한발 때에는 산에 올라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기우제를 지낸 후에는 반드시 비를 맞고 하산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지금도 산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터가 남아 있다.

◇ 벼락산옛날에 벼락을 맞아 두 쪽으로 갈라진 산이라 하여 벼락산이라 부르고 있다.

◇ 가마바위와 마당바위가마바위는 색시가 시집갈 때 타고 가는 가마와 같이 생겼다하여 가마바위라 하며, 마당바위는 바위가 마당같이 넓다랗게 깔려 있어 색시가 시집을 와 그 바위에서 잔치를 벌였다고 마당바위라 부르고 있다.

◇ 가는바위(걷는바위)옛날에 어느 가난한 집의 처녀가 머리를 감으려고 머리를 풀고 마당으로 나왔다가 산을 쳐다보니 바위가 걸어가고 있어 큰 소리로 “바위가 걷는다”고 외치는 순간 바위가 그만 그 자리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이 바위를 가는바위 또는 걷는바위라 부르고 있다.

◇ 호박샘금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샘으로 바위틈에서 옥수같은 물이 항상 흘러나오는고 있는데 옛날 이곳을 지나가던 병자가 이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하여 약수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다.

▣ 용전(龍田)용전마을은 고성현으로 개정될 당시 서마면의 용전마을로 존치한 것으로 보아 아주 먼 옛날부터 용전으로 불려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마을의 형성연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먼 옛날에 노씨(盧氏)와 박씨(朴氏)가 살면서 부자로 잘 살았다고 전하고 있어 이때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지금은 전주최씨 집성촌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 노거수(老巨樹)와 지명일화◇ 노거수마을 입구에 있는 수령 약 300년으로 추정되는 서나무로 높이 약 35m, 둘레 4m 크기이다.

보호수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 세인골(谷)먼 옛날에 세인이 태어나서 살았다하여 세인골이라 부르고 있다.

◇ 녹두바위마을 서쪽 밭둑에 있는 조그만 바위로 옛날에 이 녹두바위를 건드리면 호랑이가 내려와서 개를 물고 갔다고 전하고 있다.

◎ 돌담무덤마을 북쪽 약 200m 지점의 ‘똥묏등’에 가야무덤으로 추정되는 돌담으로 된 무덤이 있는데 이 무덤에서 많은 종류의 토기가 도굴꾼에 의해 도굴되어 거의 훼손된 상태로 남아있다.

▣ 초선(草船)◎ 동명의 유래초선마을은 본래 서마면의 지역으로 ‘선미등’이라 칭하였는데 1914년 면을 통폐합할 때 서마면과 동마면을 병합하여 마암면이 되면서 도전리에 편입되어 마을명을 푸무실(초곡)과 선미등의 이름을 따서 초선이라 명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마을의 형성초선마을은 푸무실(초곡)과 선미등(초선)이 자연 취락으로 형성된 마을로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푸무실은 지금부터 약 300여년 전에 김해허씨와 남평문씨(文氏)의 두 가문이 살면서 마을에 초원이 풍부하다하여 ‘푸무실’이라 칭하여 왔다.

선미등은 고려 현종 9년에 서마면에 속하여 있을 때 서마면의 형상이 바다의 배와 같고 선미등은 배의 꼬리 부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선미등이라 이름하여 김해김씨와 김해허씨가 대성을 이루어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 서원과 재실◇ 도연서원(道淵書院)도연서원은 마암면 도전리 543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1687년(숙종 13년)에 사림(士林)이 건립하여 정절공을 주벽(主壁)으로 천산재(天山齋), 이견와(利見窩) 양 선생을 배향하여 왔으나 고종 때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폐지되었다가 1920년에 복원하였다.

1958년(무술보사-戊戌譜事) 후에 추원사(追遠祠)를 건립하여 충목공(忠穆公), 총낭공(摠郎公), 정절공(貞節公), 현감공(縣監公) 4대를 향화존헌(香火尊獻)하고 정당과 동성, 익랑을 중건하였으며 1975년 2월 5일에 도지정문화재 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

◇ 초계재 : 초선리에 있는 남평문씨 문중의 재실로 초계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