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5돌을 맞이한 경산신문이 서상길 시대를 열었다.

경산신문은 지난 7일 창간 25주년 기념식을 맞이해 서상동에 미디어센터를 개국하고 뉴미디어시대를 선언했다.

지난 91년 7월 31일, 주식회사 경산신문사를 설립하고 이듬해 3월 7일 창간호를 발행한 후 300개월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경산신문은 1기 중방동, 2기 중앙동 시대를 거쳐 3기, 서상동시대를 연 것이다.

80년 후반 민주화과정을 거치며 지역언론의 필요성에 공감한 지역의 몇몇 유지들이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후 드디어 91년 7월 19일 발기인대회를 가졌다.

열흘 뒤인 29일 창립총회를 가진 경산신문사는 31일에는 경산등기소에 정식으로 설립등기를 마쳤다.

이후 7개월 여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이듬해 3월 7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창간 초창기에는 지역신문사에 잠깐 일했던 주필과 편집국장을 제외하고는 임직원 모두 신문제작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신문을 만들다보니 전 임직원이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씩 밤샘작업을 해야 했다.

매주 토요일 새벽에야 인쇄소에 필름을 넘겨주고 퇴근했다.

1주일에 한번은 먼동이 트는 새벽에 전 임직원이 함께 퇴근한 것이다.

매주 마감 날은 잔치날이었다.

직원들이 신문을 만드는 동안 회장,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사무실 한켠에 야식을 시켜놓고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매주 빈 소주병이 한 박스씩 쌓였다.

성암신문으로 창간호를 냈지만 6개월 만에 경산향토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했다.

경산향토신문은 창간 3주년을 지나며 지역언론의 중심으로 서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제1회 문화교실, 고려수지침강의를 시작으로 95년 제1회 경산지역문화유산답사, 96년 독서문화대상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하며 지역사회의 중심언론으로 자리잡아 갔다.

95년에는 자체 전산편집시스템을 도입했고, 판형도 대판(타블로이드배판)으로 확대하고 지면도 2배로 늘렸다.

정치기사에 대한 제약을 벗어나기 위해 일반주간신문으로 변경하고, 97년에는 매킨토시로 편집시스템을 전환했다.

초대 이상기 발행인에 이어 2002년 2대 발행인으로 취임한 서재건 대표이사는 인터넷방송국인 ‘GSN경산뉴스’를 개국하며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인터넷방송을 지속적으로 제작할 인력도, 재정도 따라주지 않았다.

과다한 초기비용 투자로 오히려 경영은 더 어려워졌다.

2007년 중방동 시대를 마감하고 중앙동으로 이전했다.

중앙동에서 경산신문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경산시경계산행과 반곡지복사꽃길걷기대회, 경산시민독서감상문대회 등 신문사가 기획 운영한 각종문화행사는 지역신문의 위상을 높이는 게기가 됐다.

지난 연말에는 지난 22년간 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배보상 소송에 전력을 기울인 결과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창간 25주년을 맞아 서상길에 미디어센터를 마련하고 성상길시대를 연 경산신문사는 미디어협동조합원과 출자자들과 함께 공동체복원작업에 다시 전력을 기울일 것이다.

서상길에 자리잡은 미디어센터가 원도심 재생사업 등 공동체 복원사업의 중심이 될 것이다.

서상길에서 펼칠 경산신문의 미래에 관심과 격려를 당부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