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어라 마셔라’ 연말 직장 술자리 풍속도 / 술자리 빠지면 ‘근무태만’ 인식 경향 / 40대 이상 남성들 과음 부작용 호소 / 20∼30대 女직원 성범죄 노출 무방비 / 직장인 91% “술자리 회식 부담” 응답 / 전문가 “회사와 개인의 삶 분리돼야”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회사에 근무하는 김모(42) 팀장은 연말만 되면 골치가 아프다.

해마다 건강검진에서 ‘술을 줄이라’는 진단을 받지만 도무지 술자리를 피할 수 없어서다.

건강을 핑계로 빠지면 무책임한 상사로 몰릴 것 같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회식의 ‘순기능’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회사원 정모(29·여)씨도 김씨와 전혀 다른 측면에서 회식에 대한 고민이 깊다.

술을 마시는 것보다 ‘술자리’가 불편해서다.

"몸매가 좋다, 살을 뺐느냐" 등 외모평가는 예사이고 술에 취한 상사가 은근슬쩍 어깨동무를 하기도 한다.

지난 주 술자리에선 고객 한 명이 "연애하고 싶다"는 말을 걸어와 크게 놀랐지만 웃어 넘길 수밖에 없었다.

연말을 맞아 송년회나 밀린 회식 등으로 술자리가 부쩍 늘면서 직장인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특히 40대 이상 남성은 폭음으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하고 20∼30대 젊은 여성 직장인들은 성희롱을 걱정하는 등 세대, 성별에 따라 갈리며 ‘분절된 회식’을 경험하고 있다.

직장인 대부분은 직급, 연령에 상관없이 술자리 회식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 5월 직장인 98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90.5%가 술자리 회식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4.9%가 회식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업무에 지장을 겪었다’는 응답도 63.9%로 나타나는 등 술자리 회식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회식에 대한 고민과 부담의 내용은 40대 이상 남성과 20∼30대 젊은 여성 간 크게 엇갈렸다.

중년 남성들의 경우 회식을 업무의 연장으로 인식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조직문화에 익숙해져 회식에 빠지는 것을 스스로 부담스러워했다.

즉 폭음·과음 및 높은 알코올 의존성을 보이는 ‘문제성 음주’ 증상을 겪는 비율이 높아서다.

실제 강북삼성병원이 남녀 근로자 7만2119명을 조사한 결과 1만6152명(22.4%)이 문제성 음주군에 속했다.

이 중 40대 이상 남성은 절반이 넘는 56.5%를 차지했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개인보다는 조직을 중시하고 수직적으로 형성된 직장문화의 부작용이란 분석이다.

지방의 한 공공기관에 다니는 A(49)씨는 "젊은 시절에는 상사와 2, 3차를 가는 게 근무의 연장으로 여기고 견뎠지만 힘들었던 건 마찬가지"라고 푸념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회사와 개인을 동일시하고 술자리에 빠지면 근무에도 태만하다는 인식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회사와 개인의 삶을 분리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정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 직장인의 가장 큰 고민은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성희롱·추행 등)다.

여성가족부의 ‘2015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성희롱 피해 경험이 있는 남녀 직장인 500명 중 39.8%가 상급자로부터 성희롱을 당했고, 여성 직장인(440명)의 46.7%는 회식 자리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술자리 대신 등산, 영화 관람 등으로 회식 내용을 변화시키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근본대책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술은 직장에 만연한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표출되는 계기가 될 순 있지만 술 자체를 성희롱의 원인으로 보는 건 오히려 위험하다"며 "직장 구성원들의 왜곡된 성의식을 교정할 수 있는 교육이 선행돼야 유쾌한 회식자리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