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 꿈꾸는 경력단절 여성지난 4일 찾은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는 매우 분주했다.

활짝 열린 현관문 앞에는 재활용품과 쓰레기가 담긴 봉투가 여러 개 놓여 있었고, 마스크와 앞치마를 착용한 여성들이 바쁜 걸음으로 집 안을 오갔다.

거실 한쪽에 앉은 김모(47·여)씨는 꽁꽁 묶여 있는 검은 비닐봉투를 하나씩 열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A할머니의 냉장고와 찬장에 쌓여 있던 각종 약재와 조미료, 건어물들이었다.

김씨는 냄새를 맡아본 뒤 상태가 괜찮은 것들은 투명한 비닐팩에 넣어 깔끔하게 정리했다.

김씨뿐만 아니라 거실에 둘러앉은 여성들 모두 재빠르고 능숙한 손길이었다.

이날은 A할머니 집 ‘대청소’ 날이었다.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A할머니는 고령인 데다 장애가 있서 평소 집 정리가 쉽지 않았다.

양천구가 할머니의 집 청소를 돕기로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집 안에서 분주히 일하던 이들은 양천구의 ‘공간 정리·수납 컨설턴트’들이다.

양천구는 서울시와 ‘상향적·협력적 일자리 창출사업’을 통해 경력단절 여성 13명을 공간 정리·수납 전문가로 양성했다.

상향적·협력적 일자리 창출사업은 시와 자치구가 함께 기획해 현장에서 필요하고 민간 연계성이 높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업이다.

현재 25개 구에서 52개 사업이 진행 중이며, 사업 참여자들은 구에서 교육 등을 받은 뒤 일자리에 투입된다.

양천구의 공간 정리·수납 컨설턴트들은 지난달부터 교육을 받은 뒤 관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현재 월∼금요일 하루 4시간씩 도움이 필요한 집을 방문해 주거 환경 개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단순한 청소를 넘어, 공간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주거 공간을 재설계하는 역할이다.

수혜자는 대부분 노인이나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다.

김씨는 아이들을 다 키운 뒤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해당 사업을 알게 됐다.

일은 쉽지 않았다.

교육이 끝난 뒤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좁은 집에서 짐이 너무 많이 나와 막막하기도 했다.

깔끔하게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수혜자 생활 동선에 맞게 정리해야 하다 보니 고민되는 점도 많았다.

이날 찾은 A할머니의 집은 거실에 짐을 늘어놓고 정리를 할 수 있었지만, 집이 좁을 때는 야외에 돗자리를 깔고 찬바람을 맞으며 정리를 하기도 한다.

또 물건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는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의 집은 며칠이 걸릴 정도로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김씨는 "수혜자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나 나이가 있는 분들이다 보니 도와드린다는 사명감이 있다.정리가 끝나고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해당 사업은 일자리 창출 외에 복지 사업으로서의 의미도 있다.

양천구 관계자는 "사는 공간이 바뀌면 생활도 바뀐다.수혜자들이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고 이야기한다"며 "저장강박증이 있는 사람의 집은 이웃에서도 불편해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사업이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부’의 강점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공간 정리·수납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한 여성은 "일을 쉬던 동안 경력이 없어 취직이 어려운데 살림하던 사람들이 익숙하게 시작할 수 있다"며 "하루 4시간만 일하니 부담스럽지 않고, 노력하면 전문가도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와 광진구가 양성하고 있는 ‘바른 먹거리 코칭&식습관 개선 플래닝 지도자’도 경력단절여성들이 주부의 강점을 살려 할 수 있는 일로 꼽힌다.

아동 요리 교육 전문가를 키우는 사업으로, 현재 30∼50대 여성 30여명이 이론과 실습 수업을 듣고 있다.

교육이 끝나면 방과 후 요리 체험 교실 등에서 일을 할 수 있다.

주부 정모(47·여)씨는 "요리에 관심은 많았지만 관련 일을 하려면 창업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경험이 없어 두려움이 컸다"며 "막상 배워 보니 앞으로 길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올해 처음으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보니 ‘후배’들을 위한 책임감도 생긴다.

정씨는 "우리가 잘해야 앞으로 사업이 계속될 테니 길을 열어주자며 수강생들끼리 ‘으?으?’하는 마음이 있다"며 "다른 경력단절여성들도 새롭게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