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 되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노벨상 수상 연구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때마다 반복되는 황당한 요구가 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주세요."가 바로 그것. 아니 초등학생도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성과에 누가 노벨상을 주겠는가! 그런 일은 없다.

초등학생이 아니라 성인에게도 쉽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단지 이러저러한 연구가 노벨상을 받았다고 전달하는 게 전부다.

그거면 충분하다.

수십 년이 지난 다음에는 초등학생도 이해하는 내용이 될 것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중력파 연구는 그나마 소개가 많이 되었지만 작년에 물리학상을 수상한 물질의 위상전위에 관한 연구는 아직도 대중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물리학자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라디오에 출연해서 최대한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항상 마지막에 듣는 질문에는 힘이 빠진다.

그것은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언제 노벨상을 받게 될까요?"라는 질문이다.

물론 2000년에 고 김대중 대통령이 수상한 노벨 평화상을 무시한 질문은 아니다.

노벨 과학상을 언제 받을 수 있을 것인지가 궁금한 것. 이때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앞으로 15년 안에는 없을 것입니다."가 바로 그것. 왜 그럴까? 간단하다.

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니 한국의 GDP 대비 R&D 예산이 세계 1위이고 한국 과학자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구하고 있는데 해 놓은 게 없다니요. 그게 말이 됩니까?"라고 반문한다.

사실이다.

정말로 해 놓은 게 없다.

어떤 연구에 노벨상을 줄까? 인류의 삶에 선한 영향을 끼친 연구 가운데 남들이 하지 않은 독창적인 것에 노벨상을 준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천재가 아니다.

그들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끈기 있기 연구하여 성공한 사람들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수없이 많은 실패를 한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태 남들이 해 놓은 연구를 따라했다.

뛰어난 과학자들이 정말 열심히 선진국의 연구를 베끼고 한국 사회에 적용한 덕분에 우리나라가 지금 여기까지 발전했다.

우리는 과학자들이 실패할 틈을 주지 않았다.

후발 주자로서 바빴기 때문이다.

한국의 연구 풍토는 소위 추격형 경제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는 이제 안다.

더 이상 추격형 경제로는 우리나라가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젠 선도형 경제로 전환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실패를 거듭하는 연구에 투자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사람과 돈이다.

이제 사람은 부족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충분한 전문가가 있다.

그들이 맘 놓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와 연구비만 있으면 된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가 사실 적은 것은 아니며 매년 늘고 있다.

하지만 톱다운 방식의 연구과제에 대한 투자가 대부분이고 연구자가 창의력을 발휘해서 주제를 제안하는 '자유공모형' 과제의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이런 추세가 기초과학 연구를 위축시켰다.

1천여 명의 과학자들이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작성했고 국회 상임위는 이 청원서를 채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안에 '연구자 주도의 기초연구' 예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약속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기초 연구 예산을 장기적으로 두 배까지 확대하기로 하고 우선 내년 예산을 확대하기로 했다.

과학자들은 이제 연구에 몰두하면 된다.

그렇다.

문제는 해결되었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가 기초과학을 등졌다.

애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책정한 2018년 개인 기초연구 지원 사업비는 1조 5000억원이었다.

기획재정부는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400억원을 삭감하여 1조 4600억원의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국회는 또다시 400억원을 더 삭감하여 최종적으로 1조 4200억원으로 확정했다.

내년도 기초과학 예산은 당초 계획보다 800억원이나 삭감된 것이다.

삭제된 800억원은 과학자가 제안한 연구 가운데 채택된 자유 주제에 지원할 자금이었다.

800억원은 720개의 과제에 해당하는 예산이다.

예산안이 국회에서 심사 받는 과정에서만 360개의 기초연구 과제가 사라진 것이다.

아쉽다.

노벨상이 연구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노벨상을 목표로 연구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실패를 겪다 보면 노벨상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말로만 기초과학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산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 시점이 한 해만 늦어진 것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