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에 파고든 VR·로보틱스#1. "이번 앨범 완전 대박날 거 같아!" "진짜? 희수 맘에 든다니 다행이다!!"아이돌 그룹 EXO(엑소)의 찬열과 한 소녀가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다.

두 사람은 친분이 없지만 다정한 대화가 가능했다.

찬열이 인공지능(AI)에 기반한 채팅 프로그램이기 때문. 이 기술은 지난해 11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음악, 인공지능을 켜다’ 프로젝트에서 소개됐다.

이 행사에서는 AI와 인간이 함께 만든 음악도 연주됐다.

AI는 200만개 단어를 배운 뒤 ‘몸짓은 미련이 되고… 모두가 햇살에 가려 울고 있었네’라는 가사를 내놓았다.

#2. 지난해 8월 말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가상현실(VR) 기기를 썼다.

시선을 아래로 향했다.

아찔했다.

발 아래로 극장의 붉은색 좌석들이 펼쳐지자, 몸이 천장으로 둥실 떠오른 것만 같았다.

눈 앞에 휠체어를 탄 여성 노인이 나타나더니 내 쪽으로 돌진했다.

순간, 노년의 나와 미리 조우한 듯 서글퍼졌다.

서울문화재단의 공연 ‘천사-유보된 제목’의 한 대목이다.

AI, VR, 로봇공학 등 첨단 기술이 문화예술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공연 현장을 VR로 중계하고 로봇 기술을 무용·미술에 활용하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서막이 열린 문화와 첨단기술의 결합은 앞으로 문화상품의 창작부터 유통·소비 전반에 대격변을 불러올 전망이다.

◆문화 속으로 성큼 다가온 VR·로보틱스·AIVR을 공연 중계에 활용하는 시도는 이미 여러 차례 진행됐다.

지난해 1월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홀의 개관 기념 연주회는 VR 중계로 전세계 81만명이 동시에 즐겼다.

삼성전자 역시 지난해 8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콘서트를 VR로 생중계했다.

구글의 ‘마젠타 프로젝트’는 AI를 음악·미술 등 예술창작에 활용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 프로젝트의 음악 분야 툴인 ‘엔신스’는 AI가 1000여가지 악기와 30여만가지 음이 담긴 데이터베이스(DB)를 학습해 전혀 새로운 음악을 내놓도록 하고 있다.

로봇 기술을 활용한 사례로는 ‘인페르노’가 잘 알려져 있다.

캐나다의 빌 본, 루이 필립 데미르의 작품이다.

‘인페르노’에서 관객은 로봇을 몸에 장착하고 춤추다 자신이 로봇의 통제대로 움직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반면 영화계는 이제 VR의 응용에 눈 뜨는 단계다.

기술적 완성도 외에도 기존 극장 시설과 이해가 상충하는 점이 걸림돌이다.

하지만 지난해 지원 예산이 크게 늘어난데다 개발업체 또한 증가해 지형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오는 3월 첫 극장용 VR영화 ‘기억을 만나다-첫사랑’이 개봉한다.

앞서 김진아 감독이 지난해 VR영화 ‘동두천’으로 그리스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VR상을 수상했다.

로봇 기술은 이미 위험한 촬영 현장에서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부산시는 2020년까지 3년간 60억 원을 투입해 차세대 영상로봇제어시스템인 ‘시네마 로보틱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문화, 생산에서 유통, 소비까지 격변최근 기술 발달은 1990년대 인터넷의 보급 못지 않게 문화예술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벤처 투자·육성 전문기업인 퓨처플레이 류중희 대표는 "미디어의 생산·유통·소비 3단계가 모두 바뀌고 있다"며 "생산 단계에서는 기계의 힘이 창작 영역에 들어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AI가 인간이 예측 못한 참신한 가사, 선율을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주크덱 등 AI를 활용해 음악을 작곡해주는 서비스가 이미 나와 있다.

유통 단계에서는 멜론·CJ E&M 등을 통한 중앙집중형 배포가 아니라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데이터 기록을 분산 저장하는 블록체인 기술과 스마트폰·개인 컴퓨터의 발달 덕분이다.

국내에서도 재미뮤직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는 등 관련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 영역에서는 IoT(사물인터넷)나 AR, VR을 통해 콘텐츠를 색다르게 즐기는 추세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예술적·미학적 실험으로까지 나가지는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융합예술센터장 장재호 교수는 "아직까지는 AI가 상업적·실용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며 "새로운 미학적 가능성이나 예술 체험을 열어보이는 부분에서는 AI의 도움이 미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