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미국의 거대 에너지 유통업체(당시 시가총액 680억달러)인 엔론은 분식회계와 내부거래 등이 드러나면서 파산했고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엔론의 파산은 단지 경영실패뿐만 아니라 정경유착, 감독기능 마비, 도덕적 해이 등 기업의 경영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후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존 보다 훨씬 강한 회계기준을 만들어 기업들에 적용하고 있다.

한국 또한 지난 2011년부터 미국 회계기준과 유사한 국제회계기준을 도입,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방위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분식회계 의혹에 휩싸여 있다.

카이는 항공기 제조사업과 관련한 원가 투입과 매출진행률을 국제기준과 다르게 작성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지난해 부터 정밀 회계감리를 진행 중이다.

카이의 각종 비리와 분식회계 의혹이 전해지면서 주가는 지난해 7∼8월 동안 반토막 나기도 했다.

분식회계 의혹관련 감독당국은 올 상반기 중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카이는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회계부정은 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카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기 전인 1999년에 서로 다른 3개 회사가 모여서 만든 회사로, 각각 다른 회계기준을 사용해오면서 정비가 잘 안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조만간 발표될 금감원의 감리 결과 발표에 따라 카이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만약 매출을 조작한 것으로 결론이 나면 카이에는 치명적 상황이 올 수밖에 없다.

분식회계 기업은 항공기 수주에 참여하는 국제입찰에 참여할 수 없고, 국가계약법에 따라 일정기간 국내에서도 입찰이 제한된다.

예를 들면 록히드마틴과 손을 잡고 수주경쟁을 펼치고 있는 17조원 규모의 미국 차기 고등훈련기(APT)사업에도 참여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가 최근 카이를 정부지원 항공정비(MRO) 사업자로 선정했다는 점이다.

항공MRO 사업자로 선정된 카이는 오는 3월 한국공항공사, 민간기업 등과 함께 MRO 전문기업을 설립하고, 10월 사업 준비를 모두 마칠 계획이다.

또 11월 국토부로부터 정비조직 인증을 받아 12월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항공기 정비사업 전문기업은 자본금 1300여억원을 포함해 향후 10년간 약 35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정부는 항공기 정비시설 지원과 군수물량의 민간이전, 규제완화와 세금감면 등 지원을 담당한다.

최대의 위기를 맞은 카이로서는 숙원사업인 항공MRO사업자로 선정됐기 때문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연히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토부의 항공MRO 사업자 결정은 성급했다.

오히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국가의 백년대계 사업인 항공MRO 사업자를 감독당국의 결과 발표 이후로 미뤘어야 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당국의 발표 결과에 따라 카이의 운명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에게 이런 위험성에 대해 묻자 "최종적으로 기재부의 승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면 그때 다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말을 흐렸다.

카이는 최근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마련한 새로운 기업 수익 인식 기법인 IFRS15를 도입하고, 외부감사인 외의 회계법인으로부터 상시 자문도 받을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배나무 밑에서는 갓 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옛말이 있다.

최근 카이가 ‘뉴(New) 카이’로 새 출발하겠다고 대내외에 천명한만큼 다시는 비리와 구설수에 휩싸이지 말고 신뢰받는 기업이 되길 바란다.

권순철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