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개혁 공약 내걸고 출범한 文정부, 檢 이용한 적폐청산 '올인' / "정권 초기 檢개혁 타이밍 놓쳤다" 盧정부 때 후회 되풀이 말아야"대한민국 어느 부처에 데려다 놓아도 검사들의 능력은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검사들만큼 헌신적이고 유능하고 책임있게 일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천정배 국민의당 의원)김 전 실장은 노태우정부에서 1991∼1992년, 천 의원은 노무현정부에서 2005∼2006년 각각 법무부 장관을 맡았다.

한 사람은 정통 공안검사 출신으로 검찰총장까지 지낸 골수 ‘검찰맨’이다.

다른 사람은 변호사 출신으로 법무장관이 되기 전엔 검찰과 별 인연이 없었다.

정치적 성향은 보수와 진보로 상극이다.

그런데도 검사들에 대한 평가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정희정부부터 박근혜정부까지 역대 정권 모두 이 ‘능력자 집단’ 검찰을 정권 운영에 십분 활용했다.

특히 박근혜정부 들어 검사들의 주가는 그야말로 ‘상종가’를 쳤다.

헌법재판소장(박한철), 국무총리(정홍원·황교안), 청와대 비서실장(김기춘), 법무장관(황교안·김현웅)부터 청와대 민정수석(곽상도·홍경식·김영한·우병우·최재경·조대환), 감사원 사무총장(이완수), 국가정보원 차장(김수민·최윤수)까지 핵심 요직을 줄줄이 검사 출신이 꿰찼다.

지난 정권 내내 ‘대통령은 왜 법조인, 그중에서도 검사를 유독 좋아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을 풀려는 언론 보도가 차고 넘쳤다.

모든 기사가 "그분께서 법치주의에 대한 소신이 워낙 확고해서"라는 측근들의 코멘트를 소개한 것 말고 뚜렷한 답을 내놓진 못했다.

훗날 헌법재판소가 "박 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며 파면을 선고한 점에 비춰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이제 와 돌아보니 이유는 간단하다.

박 전 대통령이 보기에 여러 공무원 가운데 검사의 능력과 충성심이 가장 출중했기 때문이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청와대를 거쳐 간 모든 실장, 수석 중 김기춘 실장과 우병우 수석만 각각 ‘왕실장’, ‘왕수석’으로 불리지 않았느냐"며 "검사 출신에 대한 박 전 대통령 신임이 그만큼 두터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사들의 능력이 뛰어나고 충성심이 유별난 것은 그들 조직 내부의 치열한 경쟁이 근본 원인이다.

가뜩이나 머리 좋은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에서 남을 제치고 검사장, 고검장, 검찰총장까지 오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랴. 익명으로 요구한 한 전직 검사는 "자연히 검사 인사권을 틀어쥔 청와대를 향해 여봐란듯이 능력과 충성심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장장 열흘에 달한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검찰의 한 간부가 기자들과 마주앉았다.

"적폐청산 수사를 하는 검사들도 좀 쉬느냐"는 물음에 그는 "평소 주말에도 토요일 하루 쉬고 일요일은 출근하는데 연휴라고 다 챙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하는 시대에 너무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자 이 간부가 내놓은 답이 뜻밖이었다.

"그렇게 안 하면요? 주말이고 연휴고 다 반납하더라도 서울중앙지검 주요 부서에 근무하고 싶다는 검사들이 밖에 줄을 서 있는데요."검찰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정부가 출범한지 8개월가량 지났으나 검찰개혁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정권과 ‘코드’가 맞는 검사들이 요직에 발탁되는 인사 관행은 지난 정부와 대동소이하다.

검찰의 권한을 수평적으로 분산하기 위한 검경 수사권 조정 논의는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검찰을 견제하고 감시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은 함흥차사다.

되레 검찰은 정권이 주문한 적폐청산 수사를 명분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 매서운 사정한파를 일으키고 있다.

현 정권 실세들은 검찰에 ‘더 강한 수사’를 주문하기에만 급급하다.

세상이 바뀌면 꼭 손보리라 다짐했던 지난 정권 인사들이 검찰 칼날에 추풍낙엽처럼 나뒹구니 마냥 통쾌한 모습이다.

검찰을 고치는 대신 유능한 검사들을 최대한 쥐어짜 반사이익을 누리고픈 유혹에 사로잡힌 눈치다.

문 대통령은 2011년 김인회 인하대 교수과 함께 펴낸 저서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노무현정부의 검찰개혁 시도를 ‘실패’로 규정했다.

임기 초반 정권의 힘이 가장 강할 때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여야 했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쳤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그때나 지금이나 뭐가 다른지 성찰했으면 한다.

4년 뒤 "이명박·박근혜정권 적폐청산 수사가 시급해 손을 놨다가 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갔다"고 땅을 치는 일은 제발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