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반도에 살어리랏다’/ 연기 꿈 포기하고 생계 위해 강단 선 46세 중년 시간강사 / 조연 제의·정교수 제안 동시에 받게 되면서 삶의 딜레마 빠져 / 우리 사회의 민낯과 끝없는 부조리 유쾌하게 풀어내46세 오준구는 연극영화과 시간강사다.

왕년에 꽤 촉망받던 배우였지만 몇 년째 정교수 임용에 물먹고 있다.

강의 능력은 탁월하지만, 교수사회의 정치력은 ‘빵점’이다.

즉흥 연기를 잘해 한때 연기로 일가를 이루려 했으나 생계를 위해 꿈을 포기하고 강단에 섰다.

맞벌이 아내와의 슬하에 사려 깊은 중3 딸, 말썽꾼 초등생 아들을 뒀다.

가끔 오디션 기회가 생기는데, 이번엔 대학 동기의 추천으로 미니시리즈의 조연 제의가 들어왔다.

자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임을 직감하고 동분서주한다.

집에선 아내 등쌀에 맥을 못 추는 고단함 때문인지 웃는 표정에서도 왠지 짠함이 묻어나는 사내다.‘반도에 살어리랏다’는 밥줄과 꿈줄 사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인 대학 정교수 자리와 일생의 꿈인 배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제안 받으며 선택의 기로에 선 한 남자의 끝없는 딜레마를 통해 우리 사회의 민낯, 부조리와 병폐를 유쾌한 시선으로 꿰뚫는 레알 서바이벌 블랙코미디 애니메이션이다.

주변에서 친근하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코믹하게 그려내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삶의 딜레마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오히려 춤을 추며 흥을 돋우는 장면은 한 많은 한국 사회를 무언의 춤으로 달래는 듯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준구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길을 택하는 용단을 내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마음을 접고 가족을 위해 정교수 자리를 고른다.

문제는 뒷거래다.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오준구는 그가 속한 대학사회에서 시간강사와 정교수의 계층 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당사자다.

갑과 을의 수직적 질서 속에서 수년을 시간강사로 버텨온 그에게 가족은 자신의 부조리한 선택에 대한 면죄부가 된다.

결국 그 자리를 얻기 위해 오준구가 대적 또는 극복해야 할 대상은 뒷거래를 제안한 최교수가 아니라, 자신처럼 최교수에게 이용당한 제자 김기쁨이다.

우리 현실 사회의 시스템이 약자와 약자의 처절한 밥그릇 싸움이라는 감독의 시각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모든 캐릭터가 단순하게 선하기만 하거나 악하기만 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에겐 명암이 존재하고 이는 객석에 보다 깊은 현실감을 안긴다.

각자 주요한 욕망들을 부여받은 캐릭터들은 당당히 제 몫을 해낸다.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좌충우돌하는 주인공 오준구는 대머리에 적당한 뱃살이 장착된 중년이다.

동그란 눈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희로애락을 전한다.

오준구네 가족들 역시 그저 평범한 얼굴로 학군에 따른 교육의 불평등과 터무니없는 부동산 문제 등에 직면한다.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는 딸인 오현서다.

현서는 착하다.

현서가 하는 말은 모두 맞는 말이다.

현서는 중재자이자 활력소이며 사랑이다.

하지만 현서가 가족의 형편, 주변의 환경 때문에 사회적 역할을 빨리 깨닫고 본인의 진로를 ‘사회 맞춤형’으로 잡아나가는 과정은 우리 사회가 지닌 아픔이다.

이런 현서를 위한 오준구의 자기희생은 당연한 것이 된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밥줄과 꿈줄 위에서 끊임없이 분투하는 오준구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프랑스의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는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일본의 히로시마, 캐나다의 오타와와 함께 국제애니메이션영화협회가 인정하는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화제다.‘반도에 살어리랏다’는 지난해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와 오타와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등의 공식초청작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용선 감독은 "사회적인 부조리에 분노하면서도, 결국 비극을 담고 있는 희극적인 상황극 속에서 잠시나마 삶의 위안을 얻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