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퇴직하는 게 목표입니다." 부산시 수영구 남부산우체국지부 소속 A(40)씨는 11일 집배원으로서 바라는 점이 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A씨는 "집배원도 공무원이다.어찌보면 고용이 안정됐다는 것 하나만 믿고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버티고 있다"며 "동료 집배원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도 이러다 큰일 나겠다'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고 했다.

A씨는 요즘 누구보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설 특별소통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특별소통기는 설이나 추석, 선거기간 등 우편물이 급증하는 기간을 말한다.

특히,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는 우편물이 유독 많아 '죽음의 특별소통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올해 설 특별기간은 설 연휴 전날인 14일까지다.

1년에 2~3차례 있는 특별소통기가 되면 집배원들은 비상근무체계에 돌입한다.

비상근무체계 속에서 평소에도 장시간 근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집배원들의 근무량은 더욱 과중된다.

우정노조는 "집배원들은 비수기에 비해 명절을 앞둔 특별소통기에는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이 27.3시간씩 증가하는 불규칙노동을 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올해로 11년차 '베테랑' 집배원인 A씨 역시 아직도 특별소통기만 되면 체력적 한계에 도달한다고 했다.

이 기간 발생하는 과중한 업무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 설 특별소통기를 전후로 사망한 집배원만 세 명이다.

지난해 1월 18일 오후 2시 20분 강원 화천군에서 화천하남우체국 소속 집배원 B(34)씨는 우편물 배송 도중 사망했다.

B씨는 우편물 배송을 위해 이동하던 중 뒤따르던 1톤 차량이 중앙선을 침범·추월해 사고를 당했다.

이 외에 두 명은 과로로 목숨을 잃었다.◆ "아프다고 하면 나쁜놈…천리행군 같은 소통기간" A씨는 특별소통기 시작 2일째 되던 지난 2일 오전 5시 10분에 출근했다.

설 특별소통기로 소화해야 하는 택배 물량이 넘쳐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출근해 편지를 배달해야 하루 맡은 물량을 소화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전날(1일) 특별소통기 시작으로 밤 11시 42분에 퇴근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5시 10분에 출근하기 위해 A씨는 3~4시간 '쪽잠'을 자고 우체국에 출근해야 했다.

A씨는 "결국 아파서 중간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조기 퇴근한 게 오후 9시"라며 "30시간 넘게 근무를 하다보니 눈이 아파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

A씨는 특별소통기간을 '천리행군'에 비교했다.

무한 체력으로 끊임없이 가는 것이 마치 군대 행군과도 같다는 것이다.

A씨는 "동료 집배원들 옆에 가면 파스 냄새가 진동한다"며 "다른 동료에게 일을 넘길 수 없으니 어떻게든 약으로 버티는 거다.팔목에 아대 차고, 허리에 복대 차는 건 기본"이라고 했다.

A씨가 근무하는 남부산우체국은 설 특별소통기를 대비해 아르바이트를 6명 고용했다.

그러나 집배원의 노동량을 줄여주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A씨는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이들은 짐을 나르거나, 택배가 워낙 많다보니 택배를 밖에 쌓아두는데 이걸 지키는 정도"라며 "집배 현장과 관련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집배노조는 설 특별소통기 사고에 대해 "불규칙한 노동에 일상적 탈진도가 높은 집배원에게 특별소통기는 사고 발생 위험도가 8.9배에서 12.5배까지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며 "현장에서는 소포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이륜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넘어지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우정사업본부가 이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A씨는 "우체국에서 아프다고 하면 나쁜놈이 된다.모두가 하루하루를 그야말로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게 어딘가가 부러지면 몰라도 근육통을 호소하는 경우엔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다.

이어 "최근 다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제 몸 상태를 본 의사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했다.

◆ "지난해 연차 5개 사용했다…아빠 노릇 하고파" 설 특별소통기가 아닐 때도 A씨는 오전 6시~6시 30분 사이에 출근한다.

설 특별소통기에는 우편물을 제외한 택배 물량만 우체국 지부 한 곳당 2만여 개에 달한다.

A씨가 근무하는 남부산우체국지부의 경우 120명의 집배원이 있으니 1인당 할당되는 택배 물량이 170여 개에 이른다.

특별소통기라서 예외라고 하더라도, 지부당 평소 하루 7000개 이상의 택배 물량을 소화해야 한다.

결국 집배원은 택배 물량 외에 자신이 맡은 구역의 우편 배달을 위해 일찍 출근해 할당량을 소화하는 수밖에 없는 구조에 갇히는 게 되는 것이다.

화요일은 물량이 집중되기 때문에 평소에도 택배 물량이 1만 개가 넘기도 한다.

집배원의 근무량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다.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의원실이 2016년 4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집배원의 근무환경을 조사한 결과 집배원 한 명이 매일 취급하는 우편물 양은 평균 1032.3통이었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집배원은 매달 적게는 53.5시간, 많게는 66.4시간 초과근무를 하고 있었다.

A씨는 "집배원의 근무 시간은 공식적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그러나 오전 7시만 돼도 집배원의 3분의 1은 이미 출근해 책상 앞에서 편지 구분 작업을 시작한 상태"라며 "빠진 업무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대체해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소화를 해야만 한다"고 했다.

집배원은 우정사업본부 내에서도 장시간 근로직으로 꼽힌다.

배달을 위해 우체국을 나서기 이전에 우편물 분류 및 등기우편물 인계 등으로 이유로 조기 출근이 이뤄진다.

배달 업무가 오후 3~4시에 끝나도 등기우편물 정리와 다음날 우편물 분류를 위해 정시 퇴근을 하기 어렵다.

사회진보연대 부설노동자운동연구소는 2016년 집배원의 초과근무 세부내역 분석을 바탕으로 집배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을 55.9시간, 연간 평균 노동시간을 2888시간으로 계산했다.

우정사업본부가 2017년 2월 전체 집배원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 노동시간이 48.7시간, 연 2531시간이라고 발표한 것과 차이가 있다.

기준의 차이 때문일까. 당국은 인력충원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집배노조의 생각은 다르다.

허소연 집배노조 선전국장은 와 통화에서 우정사업본부 측이 '올해 정규직 집배원 300명을 시작으로 3년 안에 1000명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것에 대해 "4500명 정도 증원돼야 집배원들이 대한민국 평균 노동시간 정도로 일을 하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2월 충남 아산 영인우체국 소속 집배원 조모(44) 씨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사망 전날 휴일임에도 출근하여 분류 업무를 실시하는 등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다.

지난해 5월 22일에는 대구 달서우체국 소속 김모 집배원이, 6월 8일에는 경기 가평우체국 소속 용모 집배원이 사망하는 등 집배원들의 사망이 잇따랐다.

대구 달서우체국 집배원 김 씨 사고의 경우, '겸배(여하한 사유로 결원이 발생할 경우, 해당 구역의 물량을 다른 집배원들이 나누어 담당하는 것)' 중에 발생했다.

A씨는 "지난해 아이가 아파서 5일 정도 조퇴를 한 게 연차 사용의 전부였다.그마저도 출근해서 제 업무를 다 소화하고 오후에 조퇴해서 병원에 가는 식"이라며 "휴가다운 휴가는 없다.정말 잘 쉬면 1년에 하루 이틀 연차를 쓰는 게 전부"라고 했다.

A씨는 또 "모든 사람이 자기 구역을 배달하고 와서 해야 하는 공동 작업이 있다.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점심도 거르는 일이 태반이다.내가 연차를 내면 동료가 내 구역까지 '겸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쉴 수 없는 것"이라며 "아이에게 아빠 노릇도 하기 힘든 상황이다"고 했다.

허 국장은 "우정사업본부가 매년 조금씩 집배원을 늘려오긴 했다.그러나 현장에서 직접적인 변화가 일어날 만한 수치라고 볼 수 없는 수준"이라며 "늘리는 방식에서도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데, 첫째 우정사업본부는 기존 집배 부하량이라고 해서 물량이 없다고 판단되는 곳은 정년퇴직 인원을 늘리지 않는다.산골 지역은 물량이 적어도 이동 구간이 길어서 결코 널널하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둘째, 증원되는 1000명도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가 아닌 개인 위탁으로 이뤄지는 것이 문제다.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정부 기관이 비정규직으로 인원을 늘리는 것은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향"이라며 "우편 업무는 손에 익을 때까지 시간이 걸리는 업무인데 손에 익기도 전에 업무량도 많고 미래가 보장이 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20%가 넘는 이직률을 보이고 있다.가르치는 데 또 시간이 걸리고 가르쳐도 나가는 이러한 방식의 고용은 현장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 적자 메우기 위해 토요 택배 재개?…누구를 위한 토요 택배인가앞서 우정본부는 우편사업부문의 만성 적자를 이유로 들며 2015년 9월 토요 택배를 재개했다.

2011년부터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최근 5년간 우편물양이 51억 통에서 41억 통으로 10억 통 감소했음에도 집배원은 결과적으로 총 624명 증원했기 때문에 '적자에 적자'라는 것이다.

현장에선 볼멘 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전국 집배원들은 토요 택배를 재개하면서 우정본부가 집배 인력 증원과 휴일 수당 지급을 노조에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집배노조는 지난해 12월 21일 전국 집배원 3500여 명을 대상으로 토요 택배 업무에 대한 의견을 받은 결과, 응답자의 97.2%가 합의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답변이 나왔다고 밝혔다.

아울러 집배원들의 잇단 사망도 토요 택배 재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잇따른 현장 목소리에 우정본부도 귀를 기울였다.

지난해 11월 새로 취임한 강성주 신임 우정사업본부장은 최우선 현안으로 집배원 근로처우 개선 대국민 서비스 품질 제고를 꼽았다.

강 본부장은 "우선 비정규직 (집배원) 근로자 1000명의 정규직화를 진행할 것"이라며 "근로 안정성 확보 이후에는 근본적인 업무시간 감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17일에는 우정사업본부와 교섭대표노조인 우정노조는 긴급노사협의회를 열고 집배원 근무체계를 월~금(통상팀)과 화~토(소포팀)으로 나눠 주5일제 단계적 시행한다고 합의했다.

다음달 3월부터 6월까지 24개 우체국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사 갈등은 봉합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정본부는 노조의 주장에 따라 집배원 노조 처우를 개선할 것을 약속했지만,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게 집배노조와 현장 집배원들의 생각이다.

허 국장은 "우정본부는 토요 택배 재개에 대해 집배원들과 같은 고통을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나라에서 노동권이 가장 좋지 않은 분야가 택배다.우정본부가 정부기업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택배 단가를 낮추는 경쟁만 같이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허 국장은 이어 "우정본부가 인원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택배 물량이 늘어나는 만큼 집배원들의 노동 강도와 시간이 확대되는 게 큰 문제다.지난 2016년 12월 31일 토요 택배를 하다가 돌아가신 집배원들도 계신다"며 "현장에서는 토요 택배에 대해 굉장히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도, 우정본부는 일반 우편이 줄어들고 있는데 무슨 문제냐고 주장하고 있다.집배원들의 노동의 가치가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성토했다.

A씨 역시 "토요 택배를 재개하면서 택배 물량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처음이랑 비교했을 때 30% 가량 늘었으나, 우리 우체국의 인력은 그대로"라며 "개인 사업으로 따지면 우정본부는 악덕기업이다.인프라를 전혀 정비하지 않은 채 노동을 쥐어짜고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