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원서연씨와 도우미견 구름이의 동행두 살 때 열병을 앓은 후 청력을 잃은 원서연(29·여)씨에게 지난해 12월13일은 최악의 날이었다.

정규직을 선발한다는 입사공고를 보고 지원한 회사에 합격했지만, 막상 출근하니 계약직이었다.

그나마 회사에 다니다 보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줄 알았다.

하지만 입사한 지 3개월 정도 지난 이날 회사로부터 이틀만 더 나오고 그만두라는 퇴사 통보를 받았다.

우울하고 괴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던 중 아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도우미견을 분양받을 생각이 있느냐’는 동생의 말에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도우미견을 키우고 싶었지만, 그동안 분양해 주는 곳을 찾을 수 없었는데 드디어 그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이 전화 한 통에 우울했던 기분이 확 풀렸다.

도우미견 ‘구름이’가 집에 온 건 보름 정도가 지나서다.

지난달 3일 집에 온 이후로 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알람을 맞춰 놔도 제시간에 못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거리를 돌아다닐 땐 사방을 둘러봐야 해 항상 긴장하며 다닐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마음이 편치 않았고, 표정은 늘 어둡고 주눅 들어 있었다.

하지만 구름이와 함께하면서 세상을 보는 방법이 달라졌다.

알람이 울리면 구름이가 이를 듣고 침대에 올라와 팔을 긁기 시작하고, 그래도 안 일어나면 발로 몸을 막 긁어댄다.

누군가 잠을 깨우면 짜증이 나지만, 눈을 떠 구름이와 눈을 맞추면 귀여움에 웃음이 절로 난다.

웃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택배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젠 그런 걱정은 없다.

무엇보다 거리를 지날 때 주위 풍경을 맘 편히 볼 수 있게 됐다.

뒤에서 오토바이가 오는지, 옆에서 차가 오는지 비장애인은 소리를 먼저 듣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들리지가 않으면 보이는 것 외에는 주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

구름이는 주위에서 위험을 감지하면 멈춰 선다.

그걸 보면 바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믿고 의지할 대상이 생긴 것이다.

구름이도 의지할 대상이 생겼다.

구름이는 경기도도우미견나눔센터에서 2013년 5월에 태어났다.

시각, 청각장애인 등을 도와주는 도우미견을 육성하는 센터는 유기견보호소에서 성격 좋고 똘똘해 보이는 유기견을 데려온다.

유기견 100여마리 중 한 마리 정도만 도우미견으로 선발된다.

시각장애인 도우미견인 골든 리트리버처럼 순종을 어릴때부터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다 자란 잡종견 등 유기견을 데려와 훈련을 시키다 보니 도우미견으로 뽑히기가 쉽지 않다.

또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사람을 좋아하는 성품 외에도 소리에 민감해야해 유기견 중 도우미견으로 선발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센터에 온 것은 구름이의 엄마였다.

임신한 상태였다.

임신한 개는 선발하지 않는데, 임신한 지 모르고 선발이 된 것이다.

센터에서 구름이를 낳은 후 엄마는 비장애인 가정에 분양됐다.

구름이는 여기서 훈련을 받은 후 도우미견으로 뽑혔다.

센터는 2016년 9월 구름이 분양공고를 인터넷에 올렸지만 1년이 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센터에선 마지막으로 지자체 복지기관 담당자에게 공문을 보내 협조를 받기로 했다.

그래도 나타나지 않으면 비장애인 가정으로 분양을 보낼 계획이었다.

다행히 지자체 복지기관에 근무하던 아는 동생이 연락을 줬다.

그날이 바로 지난해 12월 13일이었다.

홀로 지내던 구름이도 가족을 만난 것이다.

기적처럼 도우미견이 된 구름이와 원씨는 운명처럼 서로 만난 것이다.

운명처럼 만났지만 처음부터 원씨와 구름이 사이가 원만했던 것은 아니다.

원씨는 구름이가 자신을 깨워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도우미견이지만 구름이도 이런 활동에 스트레스를 받아 제대로 반응을 못 할 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원씨는 간혹 구름이에게 짜증을 내는 등 감정을 표출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 도우미견을 분양받은 다른 청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도우미견과 ‘교감’을 해야만 한다는 답을 얻었다.

원씨는 도우미견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서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 시작했다.

구름이가 실수해도 쓰다듬어주며 격려해주는 등 원씨를 믿을 수 있도록 격려를 해준 것이다.

그러자 어색했던 둘의 사이는 이제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로 발전했다.

원씨의 삶은 구름이를 만난 후 변하고 있다.

청각장애인은 겉만 봐서는 장애가 티가 나지 않지만,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옷을 입고다니는 구름이와 함께 다니면 장애가 있는지를 주위에서 알 수 있다.

도우미견에 대한 주위의 인식이 부족해 원씨는 곤란에 처할 때도 있지만 조금씩 이를 이겨내고 있다.

식당 출입을 막는 일은 허다했고, 김포공항에 있는 대형마트를 갔을 때는 구름이를 안고 다니라는 요구를 받았다.

시각장애인 도우미견도 안고 다녀야 하냐고 되물으니 그제야 ‘알았다’는 답을 받았다.

충북 청주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하고 있는 원씨는 현재 프리랜서로 수화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앞으로 다른 직장을 구할 땐 구름이와 함께 출퇴근을 할 수 있느냐가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직장뿐 아니라 영화를 보러 갈 때, 비행기를 타고 여행 등을 갈 때도 구름이는 언제까지나 원씨와 동행해야 할 존재가 됐다.

원씨는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하고, 영화관에서 영화관람을 하는 등 구름이는 삶을 공유하는 존재"라며 "구름이가 비행기를 타면 멀미를 할 수도 있어 비행시간이 짧은 제주도부터 함께 가보는 등 어디를 가더라도 구름이와는 이제 함께할 것"이라고 밝게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