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 대학생 중심 선발·외부접촉 불가·지역주민 환대 / 기계적 응원방식 개선·미모 응원단장 팬카페 없어평창 동계올림픽이 중반전으로 접어든 가운데 미녀 대학생들로 구성된 북한응원단의 활동모습이 간간이 언론에 노출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처음 참여했던 2002부산아시안게임 때보다 응원열기와 관심이 덜 한 분위기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여한 자국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네 번째 방한한 북한응원단과 관련, 응원형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현상의 차이점을 조명해본다.

우선 16년 전 부산아시안게임 때나 평창 동계올림픽이나 같은 점은 응원단원들의 나이가 10대 후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 여대생 중심의 신장 160㎝ 이상의 예쁜 여성들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또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응원단이나 단원 개개인의 언론 인터뷰나 일반 시민들과의 사사로운 대화가 금지돼 있다.

또 하나 같은 점은 경기장을 찾은 전세계에서 몰려온 관중과 평창·강릉지역 주민들의 호의적인 반응이다.

언론의 호의적인 보도도 마찬가지다.

특히 북한응원단의 긍정적인 변화는 아시안게임 당시의 경기 흐름을 무시한 채 준비된 레퍼토리에 의한 일방적인 응원모습에 비해 경기 흐름에 맞는 응원방식으로 바뀐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북한 당국이 지난 세 차례에 걸친 응원방식을 자체 분석, 절도가 있으면서도 보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풀이된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실무를 맡았던 조직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당시 280여명에 달하는 대규모 북한응원단의 응원모습을 지켜보면서 때때로 경기의 흐름을 읽지못한 채 일방적인 준비된 방식의 응원을 하는 모습을 보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번 동계올림픽 때는 많이 개선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녀 신드롬’ 현상까지 낳았던 2002년에 비해 시민들의 관심과 반응은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부산아시안게임이 벌어진 2002년 10월 대회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사이버공간에서는 북한선수 응원모임도 잇따라 생겨났다.

당시 북한의 유도 영웅인 계순희 선수를 응원하는 ‘계순희 사랑방’, ‘계순희 팬클럽’, ‘계순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비롯해 농구 스타 리명훈 선수의 팬클럽도 등장했다.

특히 다음커뮤티케이션에서는 북측 취주악단 응원카페와 빼어난 미모를 지닌 응원단장인 무용수 리유경씨 팬클럽 카페까지 생길 정도였다.

이 카페에는 수만명이 가입했으며, 자연미인 논쟁이 일 정도였다.

북한응원단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경기는 뒷전인 채 응원단을 보기 위해 비싼 표를 사 경기장을 찾는 시민도 급속히 늘어났다.

그해 10월 1일 역도경기가 벌어진 부경대체육관에는 빈 자리가 하나도 없는 만석을 이뤘다.

계순희가 출전한 같은 달 2일 구덕체육관에는 이른 아침부터 계순희 열풍이 몰아쳤다.

남북공동응원단 500여명과 계사모 회원 수십명이 경기 시작 1시간여 전부터 관중석에서 응원열기를 뿜어냈고, 체육관 매표소 앞에는 경기 시작 6시간 전인 이날 오전 8시쯤부터 현장판매 입장권을 사려는 시민들이 장사진을 쳤다.

입장권 3200여장이 매진된 상태에서 남은 표 70여장을 현장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백명이 몰려온 것이다.

암표상들은 6000원짜리 표를 1만 2000원에 팔며 돌아다녔다.

평창올림픽(북한응원단 229명)과 부산아시안게임(288명)의 또 다른 차이점은 북한응원단을 태우고 온 만경봉 92호가 이번엔 응원단을 내려놓은 직후 북한으로 귀항했지만, 2002년엔 부산 다대포항에 머물며 응원단이 배 안에서 숙박하는 데 활용됐다.

이 때문에 다대포항 인근 주민들에게도 여러 볼거리를 선사했고, 주민들도 매일같이 응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응원단원들을 따뜻하게 대했다.

주민 이희완(64·사업가)씨는 만경봉호가 정박해있던 보름여 동안 매일 밤 응원단 귀환시간에 맞춰 아코디언 연주를 선사했다.

이씨는 유행가와 동요, ‘반갑습니다’ 등을 연주했는데 응원단의 일정이 늦어질 경우 때때로 자정을 넘기기까지 했다.

이 무렵 다대포항 인근 주민들은 망원경을 동원해 만경봉호 내부와 응원을 끝내고 승선한 응원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도 했다.

당시 주민들은 "여 응원단이 돌아온 뒤 붉은색 티셔츠로 갈아입었다"고 하는 등 옷색깔까지 전파하며 관심을 갖기도 했다.

지역 경제계도 마찬가지였다.

아시안게임을 전후해 금강산 성화 채화, 만경봉호 입항 등의 문제를 놓고 부산시와 북한 당국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추후 부산∼원산간 직항로 개설, 부산 기업들의 북한 진출 등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신호가 흘러나오는 등 시민들의 기대감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아시안게임 종료 후 만경봉호는 응원단 288명을 싣고 북한으로 돌아갔고, 이후 남북관계는 별다른 관계 개선의 징조를 보이지 않았다.

이번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 남북관계가 2002년과 같은 흐름으로 이어질 지, 전혀 다른 중대한 진전이 나올 지 재삼 주목된다.

부산=전상후 기자 sanghu6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