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강릉 이지은 기자] "하하, 잠도 못잘 것 같은데…"지난 17일 남자 1만m 경기가 끝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믹스트존에 다시 등장한 이승훈(30·대한항공)은 내내 헛웃음을 지었다.

이날 3조에서 12분55초54를 기록하며 8년 만에 자신이 세웠던 한국 신기록을 경신했던 터. 하지만 뒷 순번에 배정된 선수들도 실수 없는 경기를 펼치면서 최종 순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니콜라 투모레로(이탈리아)가 12분54초32로 3위에 오른 것을 생각하면, 1초만 더 일찍 들어왔어도 동메달의 주인공은 뒤바뀔 수 있었다.

레이스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나로서는 개인 최고기록을 했지만 뒤에 타는 선수들이 본인들의 레이스를 한다면 쉽지 않다.4~5위 정도를 예상한다"라고 했던 이승훈이었지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깝다"라며 팔에 얼굴을 파묻은 이승훈은 이내 감정을 추스르며 고개를 들었다.

"크라머는 이겼으니 괜찮다.다른 선수들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 나도 앞으로 열심히 하면 된다.나로서는 100%했는데 1만m와는 인연이 없나보다.더 중요한 경기가 남았으니 그것만 생각하겠다"라는 각오는 여기서 나왔다.

이승훈은 2010 밴쿠버 대회 1만m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지만, 사실 이게 주 종목은 아니다.

남자스피드스케이팅 5000·1만m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시리즈 세계랭킹은 19위. 1만m만을 위해 따로 훈련을 하지는 않았고, 시즌 중 경기 출전 기록도 드물다.

오히려 매스스타트와 팀추월에 주력해 올림픽을 준비해왔다.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2관왕을 차지한 명실상부 세계 랭킹 1위. 맏형으로서 정재원(17), 김민석(19)을 이끄는 팀추월에서도 한 차례 우승을 이끌며 세계 4위에 올라 있다.

사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주변인들은 이승훈을 만류했다.

‘빙상의 마라톤’이라 불리는 1만m를 뛰고 나면 적어도 이틀은 회복에 쏟아야 하는 터. 차후 레이스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내가 포기하면 한국의 1만m는 사라진다.나라도 경기에 나가야 한다"라며 출전을 강행했다.

이승훈은 "기분 좋게 타서 회복하는 건 문제 없을 것 같다.가볍게 훈련하면서 체력을 올리고 경기를 준비하겠다"라며 "팀추월이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겠다"라는 말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렸다.

팀추월은 오는 21일, 매스스타트는 24일에 결전이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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