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반환점을 돌았다.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예술단 및 응원단의 참여 등 경기외적인 면 뿐 아니라 각 종목과 종합적 진행에서도 합격점을 받고 있다.

경기장이나 숙박 시설, 교통 인프라에 대해서도 개막 직전까지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만족스러운 뉴스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독특하고 상징적 존재인 북한 응원단과 관련해서도 크게 부정적 뉴스는 없는 편이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가 아이스하키 선수들 장비에 새겨진 이순신 장군이나 자유의 여신상 그림 마저 ‘정치적이니 지우라’고 강권하고 있지만 실은 이번 평창올림픽은 정치적인 면이 매우 큰 편이다.

사실 다른 올림픽들도 마찬가지지만. 북한 참가,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가장 강하게 추동한 곳도 실은 IOC였다.

올림픽이 전세계 화합과 평화의 장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NHL(북미아이스하키리그) 선수들의 불참, 도핑 파동으로 러시아 ‘선수단’ 불허 등 외부적 악재가 컸던 상황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고위급 대표단,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을 특사로 파견했다.

말은 아끼고 미소는 아끼지 않았던 김여정 부부장은 세계적 주목을 받으며 평창 올림픽 전반기를 장식했다.

그가 만일 많은 메시지를 발산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핵이나 정치에 대한 메시지는 그게 무엇이든 평가와 의견 대립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지만 북측 대표단은 이를 매끄럽게 피해나갔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의 의미를 하이재킹(hijacking)하는 것을 막겠다"고 장담했던 펜스 미 부통령 일행 들은 정반대였다.

펜스 부통령은 천안함이 전시된 평택 2함대를 방문하고 탈북자들을 만나고 올림픽 개막식과 리셉션에서 단호한 시그널을 보냈다.

북한의 인권 문제와 핵 위협을 생각한다면 문제될 것도 없는 언행들이다.

하지만 펜스는 너무 많은 정치적 메시지를 발산했다.

과도하게 느껴지기 충분했고 그래서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전달력에서만은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펜스 미 부통령 일행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러니 이제 곧 방한할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세계 언론들은 벌써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vs 트럼프의 딸 이방카’ 구도를 짜놓고 기다리고 있다.

‘매력 외교’의 대명사격인 이방카가 역전 홈런을 칠 수 있을지 전세계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다.

한국 정부다.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팝콘 봉지 들고 구경할 만큼 한가로운 신세가 아니다.

방한 기간 동안 이방카 선임고문도 정치적, 외교적 무게가 실려야 한다.

그냥 트럼프에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미국이 평창에서 외교적 고배를 연달아 마시는 것이 우리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평창 이후 한국 정부는 북한, 미국을 비롯한 전통적 우방, 국내 여론과 정치라는 세 가지 변수를 노련하게 다뤄야만 한다.

하나라도 삐끗하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여정이 펜스에게 간접적으로 한 방 먹인 것 까진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와 당장 직접적으로 각을 세우고 자극해서 얻을 것은 전혀 없다.

예컨대 펜스에 이어 이방카까지 북한 선수단이나 인사들에게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미국의 외교적 미숙함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적 신호로 해석될 것이 분명하다.

그 반대의 경우라면? ‘평창 이후’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올림픽을 그냥 맘 편하게 즐기지 못하는 우리 신세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돈과 노력을 들인 마당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야 하고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다 얻어내야 한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