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뭘 잔뜩 사놨데. 풍 온다고 참외 같은 거 주지 마라케서 안 주는데, 먹을 거 안 주나 싶어 그래 잔뜩 사다가 먹여놨나? 기름진 케익이랑 요플레랑 온갖 거 다 먹여 놨으니 탈이 안나나. 어무이 놓고 가지나 말지. 그걸 못 참고 내 오기 전에 가버렸드나." 그랬다.

엄마 방에 놓여있는 텅 빈 냉장고를 보며 올케가 먹을 것도 제대로 안 주고 그러는 줄 알았다.

엄마는 올케가 그 작은 냉장고 안에 그날그날 먹을 거만 조금씩 넣어준다고 했다.

"맛있다.얼마 만에 먹어보냐. 네 언니는 이런 참외는 생전 주지도 않는다.뭐 맛있는 거 있어도 그저 지 자식밖에 모른다." 내가 참외를 깎아주자 그러고 올케 흉을 봤었다.

병원에 누워있던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속상해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야! 네 올케가 통장이고 내 도장이고 뭐고 다 가져갔다.도장은 우짜던지 안 뺏기려고 내가 주머니에 항상 감춰 넣고 있었는데 내 옷 벗긴다고 벗기고는 도장을 가져가 버렸다.그것이 어떤 건데. 옷에다 설사를 좀 한 거 가지고 악다구니를 쓰며, 내 바지를 훌떡 벗기더라. 도장을 꺼내고 할 사이도 없었다.어쩌면 좋냐." 아무리 화가 나도 흥분하지 않는 엄마였다.

야단 칠 때도 조곤조곤, 속상한 얘기를 할 때도 조곤조곤 옛 얘기를 들려주든 그렇게 했다.

그런데 그날은 어디서 전쟁이라도 터진 듯이 흥분된 모습으로 떠들어댔다.

"돈이 얼마나 있길래요." "좀 있다.아무리 못 움직여도 내 수중에 돈이 좀 있어야지. 예전에 당숙이가 수의 사랬는데 못 사서 다시 모아서 수의 사려고 좀 모은 것도 있고, 내 장례비로 준비해놓은 것도 있다." "올케가 그 돈 가져갔다고 엄마 돌아가시면 수의 안 사 입히고 장례 안 하겠어요.자식 며느리 다 있는데 엄마가 왜 그런 걸 걱정해요." "그래도, 내가 해놓고 싶어서 그런다." 나중에 언니한테 슬쩍 물어보았다.

엄마 통장에 돈 가져갔냐고. "어무이가 니 한테 내가 통장 가(가져)갔다고 뭐라 카드나? 꼴란 오십만 원 있더라. 그 돈 같고 여기 병원비도 못한다.입원비만 해도 하루에 얼만지 아나?" 나는 그만 아무 말도 못했다.

올케가 쪼르르 엄마한테 달려갔다.

"돈 가 갔다고 고모한테 또 뭐라 켔는교" "가져간 거가. 뺏어갔지." "하이고 참 더럽어라. 그까짓 거 몇 푼이나 된다고........그 돈 줄게 딸래미 불러다 시중들라 카소, 병원비도 다 내고. 내사 더 이상 못하겠구먼." 차라리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나았다.

오빠의 운구가 나가는 시간에, 하얗게 국화로 꽃 장식을 한 번쩍거리는 커다란 리무진이 병원 문 앞에 서 있었다.

우리가 거기에 타는 줄 알았다.

"누군지 참, 죽어서도 호강한다." 올케의 중얼거림을 듣고서야 우리 쪽 게 아닌 걸 알았다.

오빠의 운구는 버스에 실렸다.

그 버스에 우리 몇 명이 탔다.

이번엔 엄마 때보다도 더 텅텅 비었다.

운전기사와 상복을 입은 여자 다섯 명 , 상조회에서 따라온 검정 유니폼 차림의 아줌마 한 명 그게 다였다.

올케의 친정 언니랑 오빠는 승용차로 따라왔다.

화장이 시작되자 둘째가 "아빠!"하고 운구를 쫒아가며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놀기 좋아하고 정 많은 것이 아빠를 쏙 빼닮았으면서도 아빠한테 미움만 받았던 딸이었다.

나가서 종종 사고도 치고, 손버릇이 좀 안 좋아 제 아빠 주머니며 동생 용돈에 돈을 대곤 해서였다.

올케도 남편 나쁜 것만 다 닮았다고 싫어해 갈수록 애가 삐딱해졌다.

그래도 정 많고 눈물도 많아, 쌀쌀 맞던 언니 동생과는 달리 할머니한테 제일 살갑게 굴었다.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훌쩍거리고 울더니, 이번에도 그 애만 울었다.

사실 아빠가 자기를 미워했던 것 이상으로 자신도 아빠를 미워했었다.

올케는 유골함을 고를 때며, 돈이 들어가는 일에 있어선 뭐든 큰 딸을 앞세웠는데 "제일 싼 거로 해라!" 하고 매번 당부했다.

이번엔 엄마 때처럼 막을 사람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상주들이 멋들어 진 봉안용기를 사들고 있는 것을 보면 부러운 듯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네 거는 억시(엄청) 좋다.저런 건 얼마나 비싸겠노." "어차피 뼛가룬데 좋은 데 담으면 뭐해" 큰 딸이 별 걸 다 부러워한다며 그런 제 엄마를 나무랐다.

"저 리무진 들어오는 거 봐라. 죽어서 뭐 알까마는 그래도 얼마나 좋겠노. 살아서고 죽어서고 저런 거 한번 타봤으면 좋겠다" "걱정마, 엄마 죽으면 내가 태워 줄게," "지랄한다.기왕이면 살아서 태워 준다카면 어디 덧나나." "살아선 비행기 타야지. 저거 보다 비행기가 훨씬 더 비싸" 지독하고 쌀쌀맞을 정도로 노랭이 짓을 해도 제 엄마를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큰딸이었다.

공부를 잘해서 중학교 때부터 동네 아이들을 모아 과외를 해주고 용돈을 벌던 아이였다.

전교 5등 하고도, 실업계 고등학교를 써야 했을 때는 서럽게 펑펑 울었었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