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파란만장한 인생역정/현대건설 입사 고속승진… 35세 사장/1992년 김영삼 공천으로 정치계 입문/서울시장 당선 뒤 청계천 등 성과 거둬/경제대통령 내세워 17대 대선 승리/재임 중 ‘명박산성’ 등 불통정부 꼬리표/노무현 서거 초래 극심한 갈등도 야기평사원에서 출발해 12년 만에 대기업 사장으로 승진하고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까지 된 ‘샐러리맨 성공신화’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포토라인에 선 다섯 번째 전직 대통령까지. 14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된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영욕의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두 번이나 드라마(야망의세월·영웅시대) 소재로 쓰일 만큼 역동적인 성공신화 그 자체였다.

그의 인생은 ‘나는 희망이 보인다’는 자서전 제목처럼 늘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이날 검찰 소환 조사를 받으면서 성공신화는 씁쓸하게 막을 내렸다.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4남3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속에서 성장했다.

서울대 상대에 입학한 둘째 형 이상득 전 국회의원의 뒷바라지를 위해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할 뻔도 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어머니에게 "학비는 한푼도 달라고 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동지상고 야간부에 입학했다.

고려대 상대에 진학한 후에도 여전히 가난했던 이 전 대통령은 매일 새벽 쓰레기를 치우며 학비를 마련해야만 했다.

대학교 3학년 때에는 상대 학생회장에 당선된 뒤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하는 6·3사태의 주모자로 지목돼 서대문형무소에서 6개월 동안 복역하기도 했다.‘하면 된다’는 이 전 대통령의 도전정신과 추진력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눈에 들어 입사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대리로 승진했고, 29세 이사, 35세엔 현대건설의 사장이 되는 ‘샐러리맨의 신화’를 이뤄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92년 민주자유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국구 공천을 통해 ‘정치인’의 길에 들어섰다.

1996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 출마해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이후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 기간 ‘BBK 의혹’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와 인연을 맺게 됐다.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사면된 이 전 대통령은 2년 뒤인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복귀한다.

임기 중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 각종 대형 사업을 ‘불도저’처럼 추진했다.

일각에서는 "개발주의식 행정에 머물렀다"는 비판도 나왔지만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전성기를 맞게 됐다.

이때의 성과는 이 전 대통령의 대선 도전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그는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당내 경선에서 물리친 후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압도적인 표차로 따돌리고 제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재임 5년간 적극적으로 자원외교를 추진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그러나 ‘불통 정부’라는 꼬리표와 이상득 전 의원 등 친인척과 최측근의 구속, 여기에 내곡동 대통령 사저 특혜 계약 의혹이 불거지면서 부인 김윤옥 여사와 아들 시형씨가 특검 수사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수사를 강행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한국사회 갈등의 불씨로 작용됐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