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북미 정상회담 개최 합의로 한반도 정세가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북한 간에 20여년 동안 이어지던 군사적 대치와 위협 대신 대화 분위기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것으로 예상되는 의제 중 가장 큰 관심사는 한반도 비핵화다.

종전(終戰) 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을 비롯한 한반도 분단체제 대전환과 북미 관계 개선도 거론되지만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실행 동력을 얻기 힘들다.

한 달 정도에 불과한 시차를 두고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만큼 한반도 비핵화는 한국과 미국, 북한이 집중적으로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5일 구성된 남북정상회담추진위원회에서 경제부처가 배제된 것도 비핵화 문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3국의 정상들이 만나 회담을 한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빠르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기존에는 실무자들이 만나 협의를 거쳐 장관이나 대표들이 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절차를 밟았지만 이번에는 탐색적 대화를 거치지 않은 채 정상들이 직접 회담에 임하는 만큼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것도 용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20여년 동안 대화와 제재, 압박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도 해결되지 않았던 북한 핵문제가 정상회담만으로 완전히 해결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험난할 北 비핵화 과정남북한과 미국 정상이 합의한다고 해도 비핵화 문제가 곧바로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비핵화가 성공하려면 북한의 핵 시설과 개발 능력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고 이를 평가, 검증하는 방식 등에 대한 관련국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비핵화에 이르는 과정 하나하나는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우선 북한 핵 시설과 능력에 대한 정보 수집과 평가서부터 한미 간에 지난한 협의과정을 거쳐야 한다.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단행한 이래 지난해 9월까지 6차례 핵실험을 단행했다.

위력도 1킬로톤(kt)에서 50킬로톤으로 강해졌다.

핵탄두 운반수단도 단거리 미사일부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문제는 북한 핵 능력에 대해 우리나라와 주변국 등이 대체로 일치하는 정보는 이것뿐이라는 데 있다.

핵무기 숫자서부터 연구기관마다 10~60여개까지 각양각색이다.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원료인 플루토늄, 고농축 우라늄(HEU)을 북한이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 국방부는 북한이 50여㎏ 수준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이 수치는 몇 년째 바뀌지 않고 있는 것으로 신뢰하기 어렵다.

북한은 2007년 영변 5메가와트(MWe) 원자로 재처리 시설 가동을 중단하는 등 불능화 조치를 취했으나 2009년 핵연료봉 재처리 재개를 발표했고, 2013년 영변 원자로를 다시 가동했다.

여기에 핵실험을 수차례 진행한 것을 감안하면 정확한 플루토늄 양을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만 원자로에서 추출한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과정에서 유출되는 증기나 운반차량의 움직임 등으로 어느 정도 추적이 가능하나 북한이 확보한 플루토늄이 100% 핵탄두 제작에 쓰인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정확한 정보 확보가 쉽지 않다.

북한은 2010년 11월 영변을 방문한 지그프리드 헤커박사에게 고농축 우라늄 확보에 쓰이는 원심분리기 2000기를 공개했다.

이 시설은 2013년 2배로 확장됐다.

영국 군사전문연구소 IHS 제인은 영변에서 연간 40~80㎏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영변 이외의 지역에서 원심분리기가 가동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고농축 우라늄은 플루토늄과 달리 대규모 시설이 필요하지 않고 전기도 외부와의 연결 없이 소형 발전기 몇 개만 가동해도 조달이 가능해 추적을 쉽게 피할 수 있다.

한미 정보당국이 영변 이외의 지역에 고농축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의심하면서도 존재 여부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 부재는 북한의 주장을 믿지 못하게 한다.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은 핵시설과 물질 보유 수준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 신고할 가능성이 높다.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의 신고 내용을 검증하려면 북한 핵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이 필요하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지, 사찰을 받아들인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일지를 놓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북한은 1993년 IAEA의 핵시설 특별사찰을 거부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그때는 핵실험도 없었고 핵탄두도 없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핵능력이 훨씬 높아져 있고 북한 핵개발 시스템도 복잡하고 다양하다.

핵 관련 정보 수집과 북한 신고 내용 검증, 사찰 등 비핵화 전 과정이 지뢰밭이나 다름없는 이유다.

◆北 비핵화, 원샷도 밀당도 완전한 해법 아냐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문제가 단번에 풀리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북한 핵능력에 대한 검증의 어려움과 국제사회의 대북 불신이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 따른 것이다.

북미 간 불신의 벽을 낮추고 북한 핵능력에 대한 검증과 확인,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는 탐색적 대화 없이 양국 정상이 만나 회담을 한다면 그 성과는 약간의 외풍에도 흔들리기 쉽다는 주장이다.

한 전문가는 이를 ‘모래성 쌓기’에 비유했다.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모래를 한움큼 쥐어 아래로 조금씩 떨어뜨려본 적이 있을거다.그렇게 모래를 계속 떨어뜨리면 피라미드 모양의 모래성이 생긴다.얼핏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조금만 흔들면 무너질 정도로 허약하다.북미 정상회담이 모래성과 같다.실무급→장관급→정상급으로 이어지는 아래로부터의 접근은 비핵화 협상을 단단하게 하는 기초다.이런 절차를 건너뛰어 정상회담에 먼저 합의했는데, 거기서 나온 성과가 얼마나 오래 갈지 장담할 수 있나?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중간선거(미국에서 대통령 임기 중간에 실시되는 연방 의원 및 공직자 선거)용 치적 역할만 할 수도 있다."북한의 대외 전략 중 가장 큰 특징이 ‘상호 모순’이라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비핵화 명분으로 ‘선대의 유훈’을 내세웠지만 이를 뒤집을 명분과 권위는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나 김 위원장의 신년사 등 차고 넘친다.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의 비난은 안중에도 없다.

비핵화 문제에서 실질적이고 항구적인 수준의 합의를 이루지 못한다면 북미 정상회담이 의미가 있을까. 이에 대해 정부 소식통은 "시장에서의 흥정을 생각해보라"고 지적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 상인이 1만원을 불렀다.당신이 7000원으로 깎자고 하면 시가(始價)는 7000~1만원에 형성된다.하지만 1000원 이상은 지불할 수 없다며 버티기를 하면, 상인은 ‘말도 안된다’고 반발하면서도 덤을 얹어주거나 값을 깎으면서 흥정을 시도할거다.그럼 7000원보다 싼 값에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다.북미 정상회담과 비핵화도 마찬가지다.두 정상이 주한미군 전면 철수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처럼 서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반복해도 괜찮다.그건 상대방에게서 가능한 많은 대가를 받아내려는 흥정의 시작이다.흥정을 거듭하면서 이견을 좁히면 북미 양측이 만족할만한 비핵화가 가능하다고 본다."북한의 비핵화는 20여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를 뒤흔든 가장 큰 변수였다.

평화체제 구축이나 남북 경제협력 등 한반도 이슈는 물론 중국, 러시아와 미국, 일본으로 나뉜 신(新)냉전 구도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어젠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해법이 기존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다.

3국 정상들이 한데 모임으로서 한반도에 ‘핵무기 없는 시대’가 찾아올까. 북한 비핵화 협상이 잘 풀릴까. 정부 소식통이 남긴 말은 우리가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다.정상회담에서 북미 양측이 상대방에게 요구받은 사안을 두고 ‘대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면,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미국의 군사옵션으로 긴장 국면이 다시 조성될 거다.수용 불가능한 조건이 나오더라도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조건에 숨어있는 진짜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대화가 실패하면, 남은 것은 파국이기 때문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