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최은희가 16일 세상을 떠나 누리꾼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고인의 영화 같은 생애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은희는 이날 오후 정기 신장투석을 받으러 서울 강서구 화곡동 자택 인근 병원에 갔다가 임종했다.

향년 92세. 고인의 빈소는 강남 성모병원에 차려지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이 같은 비보에 누리꾼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좋은 곳 가셔서 편히 쉬시길"(sdoo****) "그곳에서도 좋은 기억 많이 만들어 주십시오"(kwag****) "정말 파란만장한 삶 보내셨습니다.부디 평안하시길"(cyj7****) "또 하나의 큰 도서관이 문을 닫았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naye****) "좋은 연기 보여주셔서 감사했습니다.다음 생에도 꼭 좋은 배우로 태어나서 기억에 남는 배우가 돼 주세요"(ush0****) "정말 영화 같은 인생을 사셨죠. 명복을 빕니다"(gury****) 등 댓글을 남기며 고인의 발자취를 추억하고, 명복을 빌었다.

지난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고인은 1947년 '새로운 맹서'를 시작으로 활동 무대를 영화계로 옮겼다.

'밤의 태양' '마음의 고향'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빨간 마후라' '여자의 일생' 등에서 활약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고인의 영화 보다 영화 같은 생애와 사랑 이야기는 대중에 꾸준히 회자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1953)로 신상옥 감독과 연을 맺은 고인은 이듬해 그와 결혼한 후 함께 대한민국 영화계를 이끌었다.

고인과 신 감독은 이후 이혼했으나, 고인은 1978년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납치, 같은 해 신 감독 또한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다시 만났다.

재회 후 모두 17편 영화를 찍었으며,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영예를 안았다.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고인과 신 감독은 1986년 오스트리아 빈 방문 가운데 미국 대사관에 진입, 망명에 성공하고 1999년 귀국했다.

신 감독은 2006년 4월 11일 먼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