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사표를 수리한다.

전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권순일)가 김 원장이 19대 국회의원 시절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데 따른 후속조치다.

문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 시절 선관위와 여러 차례 ‘악연’을 맺었는데 문 대통령 역시 이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3년 12월 선관위로부터 사실상 ‘옐로카드’를 받았다.

당시는 2004년 4월로 예정된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여당인 열린우리당, 그리고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 갈라져 다투던 시절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관 및 행정관들과의 오찬에서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에 선관위는 노 전 대통령에게 "공명선거 협조를 요청한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간 역대 대통령의 선거운동 개입성 언행에 대해서는 선관위가 국무총리에게 협조 요청을 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협조 공문이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된 경우는 노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17대 총선 직전인 2004년 2월 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취임 1주년 특별회견에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또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휘말렸다.

결국 선관위는 같은 해 3월 전체회의를 열고 "노 전 대통령이 선거법 9조의 공무원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위법 사실을 명확히 한 이 유권해석은 노 전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를 받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

선관위와 노무현정부의 악연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까지 이어졌다.

17대 대선이 다가오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6월 한 연설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하니 끔찍하다"며 당시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박근혜 후보를 싸잡아 비난한 것이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결과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이런 ‘튀는’ 언행을 놓고 즉각 선관위 전체회의가 소집돼 노 전 대통령에게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준수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이번에 김기식 금감원장 사태가 불거진 직후만 해도 문재인정부 청와대는 "김 원장이 위법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감싸기에만 급급했다.

인사검증을 담당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판단에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19대 의원 임기 만료 직전 무슨 ‘땡처리’라도 하듯 남은 정치자금을 부당하게 처분한 점, 여성 비서와 외유성 해외출장을 다녀온 점 등 추가 의혹이 불거지면서 문 대통령은 ‘선관위의 유권해석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결국 선관위가 전날 선거법 위반 및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 의견을 밝히면서 김 원장은 사표를 냈다.

김 의원의 각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김종오)는 선관위의 위법 유권해석에 따라 조만간 김 원장을 피의자로 불러 선거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