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농업인 김태수 씨) 27살에 서울 생활 접고, 비봉 백도리로 귀농 청년정책네트워크단 등 지역 내 다양한 활동 수제맥주로 전국에 진출하는 다부진 꿈 밝혀
완주군 비봉면 백도리 능암마을. 7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산골이다.

이 마을에 ‘묵묵히 자신의 꿈을 일구며, 열심히 살아가는 삼십대 초반의 젊은이가 있다기에 지난 16일 한걸음에 달려갔다.

바로 오늘 만나볼 주인공은 산바람농원(산바람영농조합법인) 김경남(61)·윤인순(57)부부의 2남 중 장남 김태수(31)씨다.

서울 생활을 접고, 2014년 11월 비봉 백도리로 내려온 서른한 살 총각 태수씨의 귀농일기를 들여다봤다.

■ 어머니 고향, 백도리 능암자신을 그냥 ‘농업인’이라 불러달라는 김태수씨. 아버지의 고향은 김제, 어머니의 고향은 이곳 백도리 능암마을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이다.

부모님은 서울에서 만나 결혼해 살다가 경기도 구리로 이사갔다.

이후 고등학교 2학년 때 부친이 이곳 능암마을로 내려왔다.“아버지께서 가구공장을 경영하셨는데 IMF를 맞아 사업이 안 돼 고민하다, 마침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외할머니 혼자 사는 상황이다 보니, 내려오게 되셨죠.”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4년 시골로 내려왔지만, 이곳 생활은 만만치가 않았다.

처음 큰맘 먹고, 소를 키웠지만 광우병으로 인해 접었고, 곶감 농사도 지어봤지만 이상기온으로 인해 인건비 조차 건지지 못했다.

■ 장류 가공사업 시작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거듭하던 그의 부모님이 장류사업을 시작하면서 생활도 풀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산바람농원에서는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청국장을 비롯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분말, 오미자청 등 콩을 가공한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거의 다 로컬푸드직매장에 납품한다.

장류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그의 외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암선고를 받고 의사가 3~6개월밖에 못살 거라고 말했는데,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게 하시려고 가시오가피도 심고, 매일 청국장을 삶아 드렸어요. 이후로 5년을 더 사셨죠.”그의 모친은 할머니로부터 배운 노하우로, 매주를 빚고, 띄우고, 쑤어 장을 만들었고, 곶감을 사러 오는 손님에게 덤으로 청국장을 팔았는데, 제법 호응도 좋았단다.

반응이 좋고, 판매도 제법 솔솔하다보니 재래식 방식에서 벗어나 장류가공사업을 본격화하기로 결심, 2013년도에 영업허가를 받아 공장을 지은 뒤 현재 청국장 등 다양한 가공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완주전주신문

■ 백도리에서 꿈 키워태수씨의 꿈은 사업가였다.

초등학교 졸업 무렵 자격증을 따낼 정도로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잘 다뤘다.

그러다보니 부친은 차동차를 구입하지 않고, 대신 아들에게 컴퓨터를 선물했다.

경제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추천을 받아 각종 경제올림피아드, 경시대회 등에 참가, 다수의 입상경력도 갖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강원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평소 자신 있고, 재미있던 경제학과에 들어가려했는데, 학술보다는 실용적일 것 같은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됐어요.”대학 졸업 후, 남들은 취업 준비하느라 바빴지만, 그는 학교에서 논문작업 돕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라던 취업은 감감 무소식. 마음은 조여오고, 반복되는 일상에 몸도 지쳐갔다.

그 무렵 부친이 허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마침 일을 핑계로 담당교수에게 “시골로 내려가 아버지 일을 돕겠다”고 선언하고, 곧장 짐을 정리했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내려오게 되는 좋은 핑계가 생긴 거죠.”그렇게 도시생활을 접고 2014년 11월 어머니 고향으로 내려왔다.

차 한 잔, 맥주 한잔 마실 친구 하나 없는 조용한 시골마을에 살다보니 처음에는 외로움을 이겨내야 하는 등 적응하는 데 무척 힘들었단다.“아무리 어머니, 아버지가 잘 해 주셔도 채울 수 없는 게 있죠.”다행히도 작년 말 동생 호수(27)씨도 내려왔다.

한국조리학과를 나와 17살때부터 군부대 취사병으로, 잘 나가는 삼성계열사에서 조리사로 늦은 시간까지 일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다 보니 염증을 느껴 정리하고 내려왔단다.

“부모님과 동생, 저, 온 가족이 함께 사니 외로움은 덜하죠.”

■ 나는 완주 사람이다2014년 말에 내려와 이듬해 1월부터 로컬푸드직매장에서 1년 동안 직원으로 일했다.

마케팅팀과 매장관리 매니저 등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농산물에 대해 배우고, 인맥도 넓혀갔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기간제로도 1년 일했다.

그곳에서 강소농 교육, 농업인대학 학과 교육도 받았고, 컴퓨터를 잘 다루다보니 농업인, 발효연구회 등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강의도 하고 있다.

올해로 귀농 4년차, 이제는 완주사람이 다됐다.

완주군민기자단, 완주군 4H부회장, 청년정책네트워크단 등 지역내에서 다양할 활동을 하고 있다.“다 좋게 봐주셔서 여기저기서 활동하고 있어요. 완주는 기회가 많은 지역인 것 같아요. 쉐어하우스 등 청년주거정책, 청년농 지원도 잘돼있고요. 귀농귀촌을 고민하는 친구들에게도 완주가 살만한 곳이라고 얘기해 줍니다.”

■ 수제 맥주에 도전태수씨는 올해 완주군이 처음 추진하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에 선발됐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덕분이다.

물론 시골로 내려와 장류 가공업을 하는 부모님을 도우면서, 기획이나 행정, 세무, 마케팅 등 실질적으로 경험했던 것이 지원 사업 선발에 주효했다.“앞으로 100만원 정도 지원받으면 생활하는데 보탬이 클 거라 생각됩니다.이를 발판으로 창업도 해볼 생각입니다.”그는 수제맥주 사업을 꿈꾸고 있다.

지난해 맥주를 독학했고, 농업인대학에서 발효수업도 받았다.

공장을 지을 부지도 물색중이다.

“소비자의 입맛과 수요에 맞춰 내년도 하반기 정도 로컬푸드직매장 출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로컬푸드직매장을 테스트 마켓으로 생각하고 있다.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매력 뿐 아니라 소비자를 대상으로 가격과 맛, 포장제, 프로모션, 블랜딩 등을 시험해 본 뒤, 연구와 성과, 효과 등을 분석, 최상의 제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제품은 소비자가 찾는 법이죠. 한옥마을도 진출해볼 생각입니다.좋은 시장은 아니지만 안테나샵은 될 거라 생각해서죠.”로컬푸드에서 완성도를 높여 완주군, 더 나아가 전국으로 진출할 큰 계획도 세워놨다.

10년 뒤 “귀농해서 성공한 CEO라는 평가를 받기보다, 완주에서 잘 정착한 농업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김태수씨.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은 법’을 가슴에 늘 새겨두고 살아간다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두 가지 의미인데 후회한다고 뒤집어 지는 것도 없고, 또 하나는 최소한 후회할일을 최대한 만들지 말자라는 생각에서죠.” 2019년, 선보이게 될 ‘김태수표 수제맥주’를 응원하며, 그의 신선한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