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창시자’ 박도순 교수 쓴소리 / 정부 4가지 의제 좋고 나쁨 떠나 대입제도 접근방식 자체가 잘못 / 창의성 중요 4차산업혁명 시대 / 단순 점수로 학생 선발 말 안돼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정부의 ‘교육개혁기구’ 참여,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한국교육학회장, 교육평가학회장…. ‘화려한 이력’에서 짐작이 가듯 박도순(76·사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평생 대한민국 교육이 가야 할 길을 고민하고 그 길을 열고자 애쓴 원로 교육학자다.

박 교수가 노태우정부 시절인 30년 전 ‘대입 학력고사 체제로는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할 수 없다’는 생각에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을 설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랬던 그가 ‘수능 폐지론’까지 언급하며 우리 교육의 병폐가 심각하다고 우려했다.

기대한 문재인정부마저 대입 중심의 교육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않고 엉뚱하게 풀어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25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자택 부근에서 만난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국가교육회의가 대입제도 개편안 공론화와 관련해 최근 4가지 의제를 제시했다.

"4가지 의제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대입제도 접근방식 자체가 잘못됐다.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먼저 국민 다수가 원하는 우리 교육의 바람직한 모습이 뭔지를 깊이 논의하고 공론화한 뒤 방향부터 잡아야 한다.국가교육회의가 이런 일은 제쳐 놓고 공론화가 어려운 입시제도 개편에 매달리고 있으니 답답하다.특히 교육의 본질에 접근해 해결 방안을 찾으려면 (인식차가 큰) 진보·보수 진영 모두 머리를 맞대야 하는데, 국가교육회의의 인적 구성이 (친정부 성향) 한쪽으로 치우친 것도 문제다."―입시제도 설계 시 기본 전제는 뭔가."경쟁에 대한 관점을 정리해야 한다.경쟁 강화로 갈 경우 지금처럼 계속 성적 다툼을 시키고 국가단위 시험을 쳐 순위를 정하면 된다.그러나 성적·입시경쟁에 치여 해마다 적지 않은 학생이 자살하는 등 학생과 학부모의 고통이 크고 사회적 폐해가 심각하다.국가교육회의가 이런 의제부터 다루지 않은 것은 정말 잘못한 거다."―어떻게 해야 입시경쟁이 완화될까."입시제도만 아무리 손질해봐야 고교교육이 정상화될 리 없고 입시 경쟁도 안 준다.각각 고교와 중학교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대학과 고교의 서열화 구조를 타파하는 것이 우선이다.그러려면 전국 학생을 성적으로 줄 세우는 국가단위 시험이 없어야 한다.수능이 도입 취지와 달리 대입 전형의 당락을 가르는 주요 전형 자료로 활용되는 것도 경쟁 완화에 역행하니 차라리 폐지하는 게 낫다.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로 상징되는 ‘수월성 교육’도 전제는 소수 특별 학생이 아니라 모든 학생을 위하는 것이어야 한다."―오히려 수능의 공정성을 강조하며 정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원래 주관적 성격을 띠는 평가를 처음부터 불신하면 안 된다.(어떤 좋은 방안도) 믿지 못하면 절대 도입할 수 없다.또 1년에 딱 한 번 보는 수능은 대부분 수험생의 암기 능력에 의존한다.공정한 전형이라고 보는 게 맞을까. 단순히 점수로 따지기 힘든 게 ‘학력’이다.수능 점수의 높고 낮음으로 의사소통능력과 논리적 사고력 등의 수준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수능은 자격고사화하고 최대한 입시 영향력을 줄여주는 게 좋다."―그럼 어떻게 뽑아야 하나."기업 입사 시험 등 평가의 전체적 흐름을 보면 심층면접이 대세다.면접관 여러 명이 10분 이상 심층적으로 질문하면 응시자의 역량을 거의 파악할 수 있다.입학사정관을 비롯해 각 대학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제대로 면접을 하도록 하는 대신 부정행위가 드러날 경우 강력히 제재하면 된다.학생부도 내신 등급은 매길 필요가 없게 해야 한다.주요 대학들이 외부 평판을 의식해 정의하기도 힘든 학력 우수자를 앞다퉈 뽑아다가 대충 가르치고 졸업시키는 행태도 고쳐야 한다."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