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캡틴, 마이 캡틴(Oh captain, my captain)!"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이 명대사를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보셨겠죠? 남북전쟁 뒤 암살당한 에이브러햄 링컨을 배를 이끄는 선장에 빗대어 기리는, 월트 휘트먼의 시에서 따온 것입니다.

엄격한 규율과 획일적 진로를 강요하는 명문 사립학교에 새로 부임한 문학 교사 존 키팅(고 로빈 윌리엄스)은 학생들에게 시와 자유를 가르쳐줍니다.

키팅은 끝내 여러 외압에 부딪혀 학교를 떠나게 되지만, 학생들은 그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캡틴'을 외치죠.21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연 자유한국당에도 이러한 캡틴, 즉 지도자가 필요한 듯했습니다.

이날 의총은 당의 혁신과 쇄신을 위한 자리였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는 자유를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김성태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모두발언으로 총회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그는 "용납하지 않겠다", "끝장을 보겠다" 등 강한 어조로 당에 변화가 필요하다 호소했습니다.

"비공개로 자유토론을 하기 전 공개발언을 하실 분이 있습니까?" 진행자의 물음에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휴대전화에 계파 갈등을 암시하는 메모를 작성했다가 논란을 빚은 박성중 의원이었습니다.

그러나 박 의원은 끝내 연단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김 대행이 그를 제지했기 때문이죠.박 의원이 저지당하는 걸 목격한 탓이었을까요. 분위기는 급격히 엄숙해졌고 의원들은 누구 하나 발언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인턴 기자가 비공개 토론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알기 위해서는 의총이 종료되길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먼저 회의장을 떠나는 몇몇 의원들을 붙잡았지만, 그들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의원이 자신에게는 발언권이 없다면서 바쁜 걸음을 옮겼습니다.

회의장 안에서 누군가 나올 때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취재진의 모습은 마치 텍사스 소떼 같았습니다.

저 역시 우다다다 뛰어다니며 무리를 이뤘죠.홍문종 의원은 "나는 입이 없다"며 한 손으로 입을 가렸고, 한선교 의원은 "나한테 물으면 안 된다.내가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들 스스로 입단속(?)을 시킨 것일까요. 구체적인 상황을 듣기 위해서는 '발언권을 가진' 김 대행을 만나야만 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께 김 대행이 마침내 밖으로 나와 의총 종료를 알렸습니다.

그가 알린 내용은 앞서 몇 번이나 강조했던 혁신·쇄신, 그리고 '용납할 수 없는' 계파 갈등이 전부였죠. 김 대행은 30여 명이 장장 5시간에 걸쳐 발언한 자유토론을 '다양한 내용'이라는 단어로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지도부 사퇴와 박성중 의원의 징계 여부 등을 묻는 말에는 "그런 목소리도 있었다"고 짧게 답했습니다.

혁신안 발표 과정에 대한 반발부터 박 의원의 메모로 가시화된 비박·친박 계파 갈등까지. 당 개혁을 위해 여러 이야기가 치열하게 오갔을 거라 예상했던 인턴기자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이 무의미해진 순간이었죠.기자들 앞에 선 김 대행 뒤로 박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들의 모습에 학창시절 교무실로 불려갔다 돌아온 친구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누가 이야기를 하면 조율을 해야 하는데, 각자 떠들고 김 대행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뒀다.그냥 나가 버렸다." 앞서 SNS를 통해 김 대행의 독단적인 개혁안 발표를 지적했던 신상진 의원이 그나마 자세한 상황을 전했습니다.

김진태 의원 또한 자신의 의총 발언을 페이스북에 공개하며 견해를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의 이념과 가치가 문제가 아니라 그걸 담는 그릇이 문제였다.빨리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고 내려오라"며 김 대행의 사퇴를 촉구했습니다.

쇄신이라는 명목 하에 익숙한 권력 구조가 지속된다면, 결국은 변함없이 제자리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전의 한국당이 이루지 못했던 탈권위가 필요하겠지요.영화 속 키팅이 30년 가까이 사랑받는 까닭은 '어떤 계파의 무슨 대표'여서가 아니라, 그가 학생들에게 수평적인 의사결정, 소수의견 존중, 규율을 벗어나 자유롭게 꿈꾸는 법을 가르쳤기 때문일 겁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시인'은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상징합니다.

훌륭한 교사 키팅이 왜 학생들 곁을 떠나야 했는지, 시인이 왜 사회에서 죽게 됐는지, 돌아보는 것이 지금 '자유'가 빠진 '한국당'에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