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더 이상 방황하지마 한눈팔지마 여기 둥지를 틀어~' 가수 남진의 히트곡 '둥지'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연인에게 따스하고 포근한, '둥지' 같은 사랑을 약속하는 노래입니다.

'둥지'는 자유한국당에게 꼭 필요한 곡이기도 합니다.

홍준표 전 대표가 미국으로 간 11일, 한국당은 영등포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있었던 국회 앞 여의도를 떠나온 것이죠. 한국당도 살벌한 건물 임차료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날 인천공항에는 미국으로 떠나는 홍 전 대표를 배웅하기 위해 많은 지지자가 모였습니다.

'홍준표 키즈'로 불렸던 강연재·배현진 전 후보 역시 그들과 함께했죠. 출국 풍경만 본다면 몹시 긴 이별을 준비하는 것 같지만, 홍 전 대표는 '추석에 제사를 지내러 돌아오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홍 전 대표가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눈 때에, 한국당은 아침부터 분주히 가구와 집기를 옮기며 여의도와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꽃다발과 포옹, 심지어는 큰절까지 받은 홍 전 대표가 의기양양하게 출국장을 나선 데 비해 한국당의 당사 이전 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었죠.인턴기자는 많은 당원의 축하 속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한국당의 '집들이'를 상상했지만, 실제 찾아간 현장은 조촐한 '현판 공개'에 불과했습니다.

"발길이 안 떨어지나." 오후 2시 20분 시작될 예정이었던 현판 제막식은 4분가량 지연됐습니다.

20분쯤 당 관계자가 '김성태 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이 아직 이동 중'이라고 전하자, 취재진 사이에서는 '여의도를 떠나기 싫어서 말이 길어지는 게 아닌가'하는 우스갯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한국당 새 당사가 들어설 곳은 영등포에 위치한 건물로, 국회의사당에서 버스로 이동 시 20분 정도 소요되는 곳입니다.

의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리야 없겠습니다만, 뚜벅이 인턴기자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가기에는 약간 번거로운 위치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저만 이런 걱정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거리가 되게 애매하네. 택시 타면 5분도 안 걸리는데, 너무 가까워서 택시는 안 잡힐 거고." "스쿠터 타고 다녀야 하는 거 아냐?"한 관계자가 취재진의 걱정을 의식한 듯 다가와 농담을 건넸습니다.

"날도 더운데 이제 회의는 어떻게 오세요?" 한 기자가 "여기서 회의를 안 하면 된다"고 장난스레 답하자, 그는 "그래서 첫 회의만 여기서 하고 나머지 회의부터는 국회에서 진행할 예정"이라 말했습니다.

그사이 김 대행, 함진규 정책위의장,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 안상수 혁신비대위 준비위원장이 영등포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의원들이 축하하러 오지 않을까 주변을 둘러봤지만, 관계자는 그런 기대를 날려버리듯 속히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허허 웃으며 차량에서 내린 네 사람은 현판을 가린 천막을 걷어낸 뒤 박수로 자축했습니다.

김 대행은 제막을 위해 올랐던 계단에서 내려가 새로운 현판을 한참 올려다봤습니다.

한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생각에 잠긴 그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습니다.

김 대행은 "기존의 기득권과 관성, 또 잘못된 인식과 사고들 여의도 당사에 다 버려두고 여기서는 오로지 국민들의 삶만 생각하는 진정한 서민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쯤에서 제 비밀을 고백할까 합니다.

당 관계자는 이날 건물 내부 공사가 다 끝나지 않았기에 취재진의 출입을 제한했지만, 사실 저는 관계자가 해당 내용을 공지하기 전 미리 건물을 둘러보다가 한국당의 새 당사 일부를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내렸는데 누구도 제지하지 않더군요.2층엔 배선 및 조명 공사를 위한 각종 장비가, 3층엔 이전 당사에서 쓰던 의자, 책상, 시계 등이 옮겨져 있었죠. '무능정권 심판의 날'이라며 6.13 지방선거를 향해 달려가던 디데이 전자 달력은 꺼졌고 시계는 탁자 위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풍경은 계파 갈등 및 비대위원장 임명 문제로 혁신에 제동이 걸린 당의 상황과 닮은 듯 보였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이 이제 2층, 3층이니까 좋네. 잘 걸어가야지 뭐." 김 대행이 당사를 잠시 둘러본 뒤 건물 밖으로 나서며 했던 말입니다.

이건 한국당을 위한 다짐이기도 할 겁니다.

선거에서의 패배를 돌이킬 수도, 당의 좁아진 입지를 부정할 수도 없는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앞으로 잘 걸어 나가리라 마음을 다잡는 것 말입니다.

한국당은 과연 새로운 둥지에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한국당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한눈팔지 않고, 김 대행이 말한 대로, '진정한 서민 정당'으로 거듭날지는 모두가 지켜볼 일입니다.

여러 차례 '잘못했다'며 무릎을 꿇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그렇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