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칼럼니스트 편향된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 오래 젖어있는 조직의 ‘집단 사고’는 결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게 또 한 번 증명되고 있다.

기무사 계엄문건이 그렇고, 취임 전부터 이러저러한 구설에 오르며 현실 인식체계에 근본적 회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송영무 국방장관이 그렇다.

기무사는 ‘세월호희생자 수장’을 건의하는가 하면 촛불국면에서는 조직의 존립근거나 임무와 전혀 무관한데도 부대출동계획까지 적시한 계엄문건을 작성, 국방부 수뇌부에 보고했다.

경악할 일이다.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 보고서가 박근혜청와대에 보고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추론 가능하다.

기무사의 폐해나 불법적 전횡을 재론하는 것 자체가 시간낭비지만, 기무사는 시대의 흐름을 준엄하게 바꾸는 역사적 촛불국면에서 시민을 ‘사회불안 인자’로 상정하고 계엄을 준비했다.

언어도단이자 ‘역모’다.

그런데 더 개탄스러운 건 이 문건이 확인된 이후의 현 국방부 태도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고 각계에서 적폐청산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시민을 무력진압하려 한 기무사에 대해 별 조치없이 넉 달 간 이 역모행위를 깔아뭉갰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시민의 정부"임을 천명한 이 정부의 국방부가 말이다.

심지어 계엄문건 작성에 깊이 관여한 인물을 ‘국방개혁TF’에 참여시키기까지 했다.

조사와 단죄의 대상을 국방개혁이란 핵심업무에 참여시킨 걸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송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 광주항쟁을 "광주사태"라고 표현했다.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하는 용어인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뀐 건 1988년 국회청문회 무렵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에도 광주사태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런데 촛불정부 초대 국방장관이 버젓이 이런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그가 군 전역 후 무기거래업체에 몸을 의탁하는 동안 받은 초고액 급여에 대해 해명이랍시고 내놓은 답변은 더 가관이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답했다.

그의 역사관과 현실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촛불정부 출범을 지지하던 시민들은 그의 사고체계를 개탄했지만, 출범 초기 잇달았던 고위직 인사 잡음과 낙마가 촛불정부의 역사적 출범에 행여 장애물이 되지는 아닐까 염려하여 적극적인 의사표현은 애써 참았으리라 짐작하는 건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계엄문건이 확인되고도 넉 달 째 국방부의 납득할만한 조치가 없자 해외 방문중이던 대통령은 급기야 "독립적 수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린다.

독립수사단이란 한 마디로 ‘이 일에 국방부는 관여하지 말라’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방부는 깊이 반성하며 국민께 사과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송 장관은 넉 달 간 깔아뭉갠 것에 대해 이러구러 변명같은 핑계를 늘어놓은 뒤,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양, "수사단 활동 중 보고받지 않겠다"며 생색까지 냈다.

송 장관이 문건 인지 후 좌고우면하지 않고 즉각 단호한 대처에 나섰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터인데도 반성은 없이 "보고받지않겠다"며 뒷북치고 생색이나 내다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사람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특정 문화나 가치관이 일사불란하게 적용되는 집단일수록 편향된 가치관과 사고체계는 더더욱 바뀌기 어렵다.

계엄문건을 작성한 기무사가 그렇고, 이 보고서를 받거나 인지한 뒤 "군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라며 깔아뭉갠 역대 국방장관들이 그렇다.

‘촛불혁명의 엄중한 시대적 요구를 체화하고 사고체계의 변화를 기대하는 게 애시당초 무망했다’는 여론이 팽배하다는 걸 송 장관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군사작전권 환수문제로 여론이 비등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자후를 토했던 연설 한 대목이 떠오른다.

"장성들, 부끄러운줄 알아야지 말이야!". 항간에 ‘똥별’이란 비하적 표현이 공공연히 나돈 것도 그 즈음이다.

지금의 별들이 그 치욕적 호칭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과연 부끄러워는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십오륙 년 전 노 전 대통령의 개탄과 일갈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하다.

광주항쟁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대착오적 젠더 감각, 무슨 말을 하고 나면 꼭 사고가 터져 참모들이 부랴부랴 부연 설명과 통역을 해줘야 하는 수준의 소통 능력. 역모를 꾀한 기무사 못지않게 송 장관 역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강윤 칼럼니스트(pen337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