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과 달리 배석판사들의 경력, 나이, 구성 등 많은 게 달라졌습니다." (배석판사)"요즘 배석판사들은 사명감이 부족합니다.판결문 수정을 지시해도 바로 고치질 않습니다." (부장판사)‘벙커’와 ‘벙키’ 논쟁이 법원 내 새로운 고민거리로 부각되고 있다.

벙커란 법원에서 함께 일하기 싫은 부장판사를, 벙키란 같이 근무하기 싫은 배석판사를 지칭하는 판사들 사이 은어다.

법관 임관 15년 미만의 배석판사와 15년 이상의 부장판사 간 갈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중앙지법 한 재판부의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들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 법원 고충처리위원회에 접수됐다.

이에 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부장판사 박종택)는 부장판사 사무실과 나란히 붙어있는 배석판사들 사무실을 다른 층으로 옮겼다.

해당 재판부는 내달 사무분담이 변경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 재판부도 부장판사와 배석판사 간 갈등으로 배석판사들이 단독판사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내 ‘벙커’, ‘벙키’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 한 법관 워크숍에서 발표된 배석판사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판결문 작성 과정에서 부장판사들과 갈등을 겪었다.

배석판사들이 부장판사들이 판결문의 수정해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지 않고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판결문을 수정하는 점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부장판사들이 업무 외적으로 △배석판사와 협의 없는 재판 일정 결정 △야근과 주말근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식 △폭언이나 부적절한 언행△전임 배석이나 좌·우 배석 간 비교 등도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석판사들은 대등하게 이뤄져야 할 합의부 판결이 사실상 부장판사 중심으로 결정된다는 점도 불만이라고 토로했다.

재경지법의 한 소장 판사 A는 "부장판사들은 배석판사들을 보고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야간근무, 주말근무를 자주 하지 않는다고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부장판사들도 할 말은 있다.

대법원 규칙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 제2장 4조에 따르면 합의부의 경우 재판장에 대해 주심사건을 분담하지 않도록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에 관례적으로 판결문은 주심인 배석판사가 쓰고 부장판사가 최종 수정한다.

재경지법의 한 중견판사 B는 "배석판사는 기록을 꼼꼼하게 보고 완결성이 높은 판결문 초안을 써야 한다"며 "중요한 사실관계를 자주 누락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부장들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판결문 수정을 지시해도 배석판사들이 퇴근과 주말을 이유로 업무를 미룬다는 것도 부장판사들의 불만이다.

둘의 갈등에는 배석판사 기간이 길어지는데 대한 피로감과 불만이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력 법관이 늘고 변호사업계 불황으로 고참판사들이 변호사 개업을 꺼리면서 법원 내 인사적체는 심각해지고 있다.

소장 판사들이 배석판사로 근무해야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전국 최대규모인 중앙지법의 경우 법관 임관 15년째인 사법연수원 33기까지 배석판사로 근무하고 있다.

다른 법원들도 상황은 비슷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와 비교해 배석판사들의 법관 경력과 연령은 올라갔지만 판결문 작성, 부장판사 중심의 대등하지 못 한 합의부 판결 등 기존 합의부 관습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 소재 판사 C는 "과거에는 길어야 5년가량 배석판사로 근무했다면 지금은 7∼8년, 나아가 10년가량 배석판사를 맡는다"며 "이런 추세라면 배석판사 근무기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판사들 사이에서는 1심을 전원 단독화하고 지방법원을 중심으로 항소심을 대등재판부로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오는 23일 예정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11일 법관대표회의에서도 배석판사 보임기준 및 지방법원 재판부 구성방법에 관한 안건이 상정됐으나 자세한 논의는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염유섭·배민영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