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53) 전 충남도지사 재판에 대한 여론이 '피해자 동정론'에서 '신중론'으로 바뀐 양상이다.

피해자 김지은(33·전 충남도 정무비서) 씨가 지난 3월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행 등을 당했다고 폭로했을 당시 위로했던 여론이 지배적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김 씨가 폭로한 지 약 4개월이 지난 최근에는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온프라인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16일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안 전 지사의 재판과 관련한 기사에는 '선고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댓글이 많은 공감 수를 기록하고 있다.

대체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근거해 법원의 선고 전 피해자와 가해자로 특정하지 말자는 취지의 글들이다.

헌법 27조4항은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김 씨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는 시각이 깔렸다.

김 씨는 안 전 지사로부터 지난해 7월부터 4번의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정신적 충격이 큰 성폭행을 4차례나 당한 뒤 폭로했느냐에 관한 의심이다.

심지어 김 씨를 속칭 '꽃뱀'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김 씨는 지난 3월 5일 JTBC와 인터뷰에서 "거부 의사를 표시했는데도 성폭행을 당했고, 위계서열에 의한 성폭력이었기 때문에 반박이나 저항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물론 김 씨와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했다고 주장하는 안 전 지사에 대한 비난 여론은 여전하다.

정치적으로 재기 불능하고 안 전 지사의 가족과 지지자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는 비난의 글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재판 결과를 보고 비난해도 늦지 않다는 최근 여론은 김 씨가 폭로했을 당시 안 전 지사를 향했던 맹비난과 다소 차이가 있다.

안 전 지사의 재판 내용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김 씨 측은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김 씨 측 변호인은 지난 13일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조병구) 재판부에 "재판을 공개 결정한 이후 피고인 측이 신청한 증인의 발언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2차 피해가 심각하다"라고 주장했다.

또 "김 씨는 자책감과 불안감 등으로 불면증을 겪으며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면서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있으니 소송지휘권을 엄중히 행사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실제 피고인 측 증인의 증언이 보도된 이후 여론은 김 씨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형성되고 있다.

안 전 지사의 아내 민주원(54) 씨는 지난 13일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김 씨가 부부 침실로 들어와 침대 발치에서 3~4분간 내려다봤다"면서 "남편이 '지은아, 왜 그래'라고 말하자 김 씨는 '아, 어' 딱 두 마디를 하고는 후다닥 쿵쾅거리며 도망갔다"고 증언했다.

안 전 지사 부부는 지난 8월 1박 2일 일정으로 충남 보령의 한 리조트에서 중국 대사를 대접했고, 당시 수행비서 김 씨도 동행했다.

이후 한 포털사이트에는 민 씨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김 씨를 무고로 보는 여론이 생겼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의 2차 정신적 피해에 대해 둔감하다는 지적이 있다.

피해자에 대한 공격성을 띤 '여론재판'이 생겨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성폭력 피해자는 불특정 다수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선을 우려해 침묵하는 경우이다.

이와 관련 박정미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와 통화에서 "'꽃뱀'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듯 여성이 성폭력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 사건이 왜, 어떻게 발생했는지 면밀히 검토하기에 앞서 이 여성이 어떤 저의로 문제를 제기했는지,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가해자로 지목된 이에 대한 앙심이나 원한을 품고 무고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게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여론재판이 계속될 경우 재판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안 전 지사 재판의 핵심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여부인데, 김 씨의 행동이 통상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여론재판은 이미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변호사는 통화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가해자로 속단해 무조건 비난하지 않겠다는 측면은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면서도 "다만 피해자의 도덕성과 사생활을 사건과 결부해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행위는 피해자에게 정신적 2차 가해가 충분히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회·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한 사건이고 이슈이다 보니 왜곡된 정보가 확대 재생산되는 우려도 있다"며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재판부와 언론이 이 사건의 진행과 보도에 대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