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고속도로 다리를 무너져 적어도 26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다치는 참극이 빚어졌다.

붕괴당시 다리위를 달리던 차량 35대에 추락하면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번 일은 1994년 10월 21일 일어났던 성수대교 붕괴참사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양을 나타냈다.

◇ 2018년 이탈리아 고속도로 다리 붕괴 ▲ 이탈리아 제노바 A10고속도 모란디 다리 80m 뚝 끊어져14일(현지시간) 오전 11시30분쯤(한국시간 14일 오후 6시30분) 이탈리아 서북부 리구리아 주 제노바 A10 고속도로 모란디 다리 중간 부분이 무너져 뚝 끊어졌다.

당시 다리위를 달리던 승용차, 트럭 등 35대의 차량이 아래로 떨어졌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최소 26명 사망, 사망자 40명 가까이 늘어날 듯 구조에 나선 리구리아 주 당국은 붕괴 현장에서 부상자, 사망자를 병원으로 옮기는 한편 다리 잔해 사이를 뒤지고 있다.

15일 오전 현재 26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됐지만 이탈리아 현지 ANSA통신은 소방당국 관계자를 인용해 사망자 수가 더욱 늘어 총 35명에 이를 수 있으며 많을 경우 희생자가 40명선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 모란디 다리 붕괴부분이 주택가 부근이 아니여서 천만다행모란디 다리 밑에는 주택과 건물, 공장 등이 있었지만 무너진 부분이 천만다행으로 주택과 건물 등이 위치한 곳이 아니었다.

또 떨어진 콘트리트 잔해도 주택을 덮치지 않았다.

▲ 1968년 완공된 50년 노후 교량, 2년전 보강공사 했지만 프랑스와 밀라노를 잇는 A10 고속도로에 있는 모란디 다리는 제노바를 포함한 이탈리아 북부 도시들과 리구리아 해변을 연결하는 사장교(탑을 세워 교량을 케이블로 연결하는 형태)로 총 길이는 1.1㎞에 이른다.

1968년 완공된 모란디 다리는 평소 통행량이 많았다.

사고 당시도 휴가철인 데다 이튿날은 성모승천대축일로 휴일이어서 평소보다 통행량이 많았으며 폭우까지 쏟아졌다.

모란디 다리는 2016년 보강공사를 했지만 2년 만에 붕괴, 부실공사 논란이 일고 있다.

▲ 이탈리아 정부, 책임질 일 나타나면 반드시 책임 물을 것2016년 제노바 대학의 안토니오 브렌치크 교수는 "모란디 다리의 디자인이 공학기술의 실패로 당장 교체하지 않으면 유지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장을 찾은 다닐로 토니넬리 이탈리아 교통부 장관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참사"라면서 인재로 확인된다면 그 누구라도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했다.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도 "엄청난 비극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현대 국가, 현대 시스템 속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성수대교 48m 뚝 끊어져 한강으로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서울 성동구 성수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을 연결하는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48m가 무너져 한강으로 떨어졌다.

당시 사고부분을 달리던 승합차 1대와 승용차 2대는 현수 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추락했고 붕괴되는 지점에 걸쳐 있던 승용차 2대도 물속으로 빠졌다.

한성운수 소속 16번 시내버스는 붕괴부분을 막 통과했짐나 뒷바퀴가 붕괴 지점에 걸쳐있다가 차체가 뒤집혀 추락했다.

▲ 등교 무학여고 학생 8명 등 32명 사망, 17명 부상이 사건으로 강남에서 강북의 무학여고로 출근하던 학생 등 49명이 한강에 빠졌다.

그 중 32명이 사망했으며 무학여고생 등이 탔던 16번 버스 사망자가 무려 29명에 달했다.

사망자 중에는 무학여고 학생 8명, 무학여중생 1명, 서울교육대학교 여대생 1명, 필리핀인 아델 아이다 등 외국인 1명이 들어 있었다.

▲ 해외토픽으로 국가 신뢰도 추락, 강남북 교차 학교 배정 폐지성수대교 붕괴 사진은 전세계로 퍼져나가 한국 신뢰도가 크게 손상됐다.

무학여고, 여중생 피해가 커 강남북 교차학교 배정제도도 폐지됐다.

8학군에 학생들이 크게 몰리는 바람에 다 수용할 수 없자 교육당국은 강북, 강남 학생들을 섞어 학군차이를 줄이겠다며 교차배정제도를 만들었다.

사실상 8학군에 배정되지 못한 학생들은 강북 빈자리로 보낸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 뒤 한강을 건너 학교를 배정하는 제도가 사라졌다.

▲ 1979년 10월 준공 15년만에, 대표적 빨리빨리 부실공사 성수대교붕괴사건은 건설사의 부실공사와 감리담당 공무원의 부실감사, 빨리 만들고 보자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대참사였다.

성수대교는 1977년 4월, 2년 6개월뒤인 1979년 10월에 준공됐다.

하지만 15년만에 무너져 내렸다.

50년을 버틴 이탈리아 모란디 다리와 다른 점이다.▲ 서울시장 교체, 모든 교각 일제 점검, 1997년 7월 새로운 성수대교이 일로 이원종 시장이 사임, 최병렬 시장이 취임했다.

한강일대 다리를 비롯해 전국 교량 일제점검에 들어가는 등 한국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성수대교의 경우 무너지지 않은 부분을 보완, 중간 부분만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는 토목학계 진단도 나왔지만 새로 건설키로 결정했다.

현대건설이 나서 1997년 7월에 새로운 성수대교를 완공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