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26% “부부끼리 떠나겠다” 1위 / “부모와 함께”는 15.8%로 3위에 그쳐 / “자식이 전화 한 통 없이 가면 섭섭해” / 추억 공유할 수 있는 관광지 만들어야"전화했더니 아들이 며느리랑 휴가 간다더라고. 먼저 안 물어봤으면 알지도 못할 뻔했지."성(姓)을 밝히길 거부한 A(73)씨의 말이다.

폭염 기세가 누그러지지 않아 혹시 아들 내외가 잘 지내는지 전화했다가 며느리를 데리고 해외로 휴가를 떠난다는 아들의 말을 들었다면서.A씨는 "어쩜 그리 한마디 없이 훌쩍 떠날 생각을 했느냐"며 섭섭한 기색을 드러냈다.

옆에 있던 비슷한 나이대의 노인 두 사람은 그의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기자는 최근 지하철 노약자석 근처에 섰다가 어르신들이 여름 나기로 말을 나누던 것을 듣게 됐다.

휴가로 주제가 옮겨가면서 A씨가 아들을 향한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자, 어떤 사연이냐고 질문했다가 이러한 답을 들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 결과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4명이 7월 말에서 8월 초에 휴가를 떠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인천국제공항공사도 올해 하계성수기 특별 교통대책 기간인 지난 7월21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약 614만명이 인천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측했다.

휴가지로 떠나는 이들의 움직임이 본격화된 가운데 떠나는 자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부 노인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인크루트 설문조사(직장인 507명 대상)에서는 ‘여름휴가를 누구와 함께 보낼 것이냐’는 질문에 ‘부부와 떠나겠다(26.2%)’라는 답변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으며, ‘자녀와 함께 간다(25.5%)’는 답에 이어 부모와 함께 휴가를 보내겠다는 응답자 비율은 15.8%로 나타났다.

서울 종로구 송월동 공식관측소가 서울 낮 최고 기온을 37.9℃로 측정한 3일 오후, 탑골공원과 인근 ‘락희거리’ 등에서 만난 노인들은 자녀 세대 휴가와 자기들의 삶을 별개로 여기고 있었다.

휴가지에서 즐기는 상쾌한 즐거움은 딴 세상의 것이었다.

B(74)씨는 "독립한 딸이 하나 있는데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여름휴가를 간다는 말을 들었다"며 "같이 갔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비행기 타는 것도 무리고 어른이랑 같이 가면 아이가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는 않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더위를 쫓기 위한 부채질마저 힘에 부쳐 제대로 하지 못하는 락희거리 노인들 앞에는 장기알 없는 나무 장기판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자녀 세대 휴가에서 소외감을 느낀다는 상담사례가 있는지 서울의 한 노인복지관에 질문했더니 "따로 분류해놓은 사례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만, 홀로 사는 노인들이 수강생의 대부분이라는 관계자의 귀띔을 토대로 비록 상담은 하지 않았지만 휴가철 연락 하나 없는 자녀에게 적잖이 서운함을 느끼는 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휴가 떠나는 자녀의 모습에서 노인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왜 함께 떠나지 않느냐고 묻지만 말고 환경이 뒷받침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정란 한서대학교 보건상담복지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시각에서는 자녀와 부모가 함께 휴가철 여행을 떠나는 게 맞는다고 볼 수 있지만, 어르신들을 모시고 갈 수 있는 장소 등에 대한 선택 제약이 따르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러 세대가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여행지 환경이 많이 갖춰져 있지 않다"면서 "그런 방향으로 환경을 조성해 나간다면 많은 사람들의 선택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물론 휴가 떠나는 모든 자녀가 부모에게 무심한 건 아니다.

최근 인천공항에서 다른 소재로 취재 중 만난 황모(35)씨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께 안부 인사를 드렸다"면서 "잘 다녀오라는 말씀을 아버지께서 하셨다"고 했다.

그는 "아무래도 여름이고 바깥에서 오래 다니시면 아버지께서 힘드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날씨가 조금 선선해지면 국내 관광지에 아버지를 모시고 다녀올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