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이라는 이름을 아시는지?1854년에 태어나 1932년에 사망한 미국 사람 이름까지 알아야하는 건 아니지만, 단지 이름과 성 모두를 정확히 알지 못할 뿐, 설명을 들으면 알만 한 사람이다.

조지 이스트먼은 지난번에 다루었던 이스트먼 코닥사(Eastman Kodak Company)를 1892년 설립한 사람이다.

오늘은 그에 대하여 얘기해 볼까 한다.

이스트먼을 설명하는 수식어 중에는 ‘사업가’ 이외에도 ‘천재 발명가’, ‘박애주의자’, ‘자선가’ 등이 있다.

그 수식어들만 봐도 그에 대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이스트먼은 집안 사정으로 인해 어린 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은행에서 일하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사진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몇 년에 걸쳐 연구개발한 사진 기술을 바탕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코닥사는 셀룰로이드 재질의 롤필름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이후 컬러필름도 개발해 엄청난 매출을 기록했고, 사진 분야는 물론 영화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스트먼은 시대를 앞선 경영인이라는 평가도 받는데, 노동조합이 막 설립되던 시기에 직원배당, 종신고용을 비롯해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 등도 실시했다고 한다.

이스트먼은 생전에 7천500만 달러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음악 애호가였던 이스트먼은 이스트먼음악대학(Eastman School of Music), 의과대학 등을 세우고, 저소득층을 위한 병원 등도 미국과 영국 등지에 설립했다.

유산의 대부분은 로체스터대학교(University of Rochester), 로체스터공대(Rochester Institute of Technology), 매사추세츠공대(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 기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한다.

이스트먼 흔적은 코닥사가 있는 뉴욕 주 로체스터 시 그가 살던 집에 조성된 박물관과 영화관, 정원에 남아있다.

이스트먼은 결혼한 적도, 자녀를 둔 적도 없는데, 그가 사망한 후 어머니와 살던 집은 로체스터대학교에 기증되었으나, 이후 로체스터 시에 기증되어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스트먼박물관에서는 코닥사가 개발했던 카메라와 필름 등을 비롯해 사진과 영화 관련 초기 장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사진전시회 등도 지속적으로 개최되고, 옛 질산염필름 상영도 가능한 영화관(Dryden Theatre)에서는 다양한 영화도 상영하고 있다.

사진과 영화 필름도 다수 소장하고 있고, 복원 관련 대학원 교육과정, 단기 교육과정을 비롯해 학술 연구 등도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박물관, 영화관과 연결되어 공개되고 있는 저택은 복원 당시 사진과 메모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하는데, 내부와 외부, 정원에는 19세기 건축 양식의 흔적과 이스트만의 흔적을 담아내고 있다.

거동이 불편했던 어머니를 위한 미니 엘리베이터, 음악 애호가의 저택답게 건물 자체를 이용해 설치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 그밖에 사진과 영화 관련 체험과 전시 공간까지.필자는 이스트먼의 저택에서 그의 흔적을 만나다, 미처 몰랐던 사실을 접했다.

이스트먼은 77세였던 1932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척추협착증으로 인한 통증과 장애와 싸우다 "My work is done. Why wait?" 이라는 유서를 남겼다.

발명가이자 사업가이며 음악애호가이자 자선가였던 이스트먼은 누구나처럼 영광과 고통을 모두 겪은 사람이었다.

그의 도전과 시도, 나눔, 그리고 안타까운 떠남 등을 몇 개의 단어와 문장으로 재단하거나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남긴 흔적들을 통해 그는 꽤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가 설립한 회사, 학교, 병원, 그리고 그가 개발한 필름에 담긴 사진과 영화들을 통해서.송영애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사진출처 = Courtesy of the George Eastman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