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국민연금] (상) 2057년 고갈되는 국민연금/고령화·경기침체에… 제도 개혁 않으면 ‘부과식’ 전환 불가피/근로세대 보험료로 은퇴세대 부양/ 적립금 고갈 獨 재원조달 방식 바꿔/ ‘4차 재정추계’ 결과 한국도 같은 길/ 부과식 땐 2060년 보험료율 26.8%/ 자문위, 세대간 형평성 맞추기 위해/ 보험료율·수급연령 단계적 상향 등/ '노후소득보장'·'선택지' 2개안 제시/ "후세대 부담 지금부터 줄여나가야"1889년 세계 최초로 공적 연금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기금 고갈을 앞두고 1957년 연금법을 개정했다.

제도 운영 초기에는 가입자가 수급자보다 많아 적립금이 쌓이지만 은퇴세대가 늘수록 기금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적립식’에서 ‘부과식’으로 재원조달 방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부과식은 적립금을 축적하지 않고 현재 근로세대가 납부하는 보험료로 은퇴세대를 부양하는 방법이다.

매년 그때그때 걷어 지급하게 된다.

현재 국민연금처럼 적립금이 있을 때는 기금 수익을 내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줄일 수 있지만, 부과식이 되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독일도 1969년부터 적립금이 고갈돼 완전부과 방식으로 바꾼 뒤 보험료율이 한때 20% 이상까지 올랐다.

독일 연기금이 80년 만에 소진된 근본 원인은 ‘인구 고령화’와 ‘장기적 경기침체’였다.

한국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가 2013년 3차 때보다 올해 4차 추계에서 기금 고갈 시기를 3년 앞당긴 주요 원인은 고령화와 경제성장률 하락이다.

현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한국도 약 40년 뒤 부과식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령화, 경제성장 둔화… 국민연금 악재17일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가 발표한 ‘4차 재정추계’ 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까지 덩치가 커졌다가 급격히 감소해 2057년 소진될 전망이다.

2013년 3차 추계(2060년) 때보다 고갈 시기가 3년 빨라졌다.

3차 때보다 결과가 나빠진 건 유례 없이 심각한 저출산고령화와 경제성장 둔화 때문이었다.

2020년만 해도 3차 때의 합계출산율 전망치는 1.35명이었지만 4차 때는 1.24명으로 낮아졌다.

반면 기대수명은 여성과 남성이 각각 85.7세, 79.3세에서 86.2세, 80.3세로 높아졌다.

그만큼 보험료 수입은 줄고 지출이 늘어나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하향 전망된 탓에 보험료 수입과 직결된 임금상승률도 낮아졌다.

2018∼2020년 실질임금상승률 전망치는 3차 때 3.6%에서 4차 때는 2.1%로 확 떨어졌다.

근로자 임금이 정체되면 연금 재정도 늘지 않는다.

경기침체는 기금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금운용수익률 전망치는 3차 때 2018∼2020년 7.2%에서 4차 때는 4.9%로 떨어졌다.

이후 수익률 전망도 3차 때보다 전반적으로 낮아졌다.

위원회는 역대 최저인 2017년 출산율 1.05명이 지속된다고 가정한 추계를 따로 냈다.

그 결과 출산율은 기금고갈 시점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최근 태어난 아동이 근로 연령에 포함되려면 20년 이상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다만 2057년 기금 고갈 이후 부과식으로 바뀌었을 때 미칠 영향은 상당했다.

통계청 인구 중위값을 적용했을 때는 2060년 연금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이 26.8%였지만 출산율 1.05명 지속 때는 29.3%로 상승했다.

2088년에는 각각 28.8%, 37.7%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재정 목표 처음 제시… 2088년 적립배율 1배현재대로 보험료율 9%를 유지하다가 기금 고갈 후 완전부과식으로 전환되면 후세대는 급격히 인상된 보험료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재정추계위 등 국민연금 자문위원회는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고 세대 간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두 개혁안을 제시했다.

2003년 재정추계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70년 뒤인 2088년 적립배율 1배를 유지하겠다는 구체적인 재정 목표도 세웠다.

적립배율 1배는 해당 연도에 1년치 지급분이 있음을 뜻한다.

개혁안대로 바꾸면 2088년까지 기금이 소진되지 않고 적립금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위원회는 전망했다.

두 안의 차이는 국민연금을 노후소득보장의 중심축에 놓느냐, 선택지의 하나로 보느냐에 달려 있다.

첫번째 안은 국민연금 역할 강화를 위해 2028년까지 40%로 내리기로 한 소득대체율을 2019년 45%로 높일 것을 주문했다.

이를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19년 11%로 올리고 2034년 12.31%로 추가 인상해야 한다.

보험료율 조정과 함께 독일처럼 일반재정 투입도 검토한다.

독일은 공적 연금의 연간 지출액 24.2%를 세수로 보조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 다 함께 부담을 지며 국민연금을 노후소득보장 중심축에 놓자는 것이다.

두번째 안은 국민연금을 하나의 선택지로 보며 ‘더 적게, 더 늦게’ 지급할 것을 주장했다.

대신 기초연금, 퇴직연금 등 다양한 소득보장 체계를 촘촘히 연계한다.

2029년까지 보험료율을 13%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2038년부터 5년마다 1세씩 연금 수급연령을 늦춰 2043년부터는 67세에 연금을 받게 한다.

연령이 높을수록 연금액을 깎는 ‘기대여명계수’도 도입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보다 보험료를 더 많이 내도 더 늦게 받는다.

대신 소득하위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더 강화하고, 민간에서 운영하는 퇴직연금이 제대로 활용되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저부담-고급여’ 형태로 설계돼 지속 불가능한 구조다.

초기 가입자들이 위험 부담을 떠안은 만큼 이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

현재 20∼30대만 해도 수혜자 축에 속한다.

제도 개혁 없이 2057년 기금 고갈을 맞게 될 경우 현재 30세 청년은 그때 69세가 돼 더 이상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고갈 이후 급등한 보험료 부담을 지게 될 세대는 그보다 후세대다.

이들에게 부담을 떠넘기지 않으려면 지금의 청년세대도 부담을 나눠 져야 한다.

박성민 국민연금연구원 재정추계분석실 선임연구위원은 "개혁의 시기가 늦어질수록 미래세대가 져야 할 보험료율은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현재의 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후세대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