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터 제공하는 사람들 / 지자체 그늘막"요즘 같은 더위에 그늘이 얼마나 소중한지…"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 영천동 삼호아파트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는 의자 3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의자는 정류장 앞에 있는 한 미용실이 주민들에게 태양을 피해가라며 마련해 놓은 것이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내리쬐는 햇빛을 피했고 15분에 한대씩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있던 주민 황의태(81)씨는 "고작 의자 몇 개지만 큰 도움이 된다"며 "이 더위에 버스를 기다리며 서 있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정류장 앞 ‘박정은 헤어클리닉’은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을 위해 18년 전부터 가게 천막 아래 의자를 내놨다.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 1시쯤이 되면 가게 천막을 넓게 펴 시원한 그늘도 제공한다.

역사적인 폭염에 가게가 마련한 그늘은 주민에게 큰 의지가 된다.

버스를 기다리던 조모(69)씨는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지만 그쪽은 햇빛이 강해 이쪽에서 버스를 기다리곤 한다"며 "미용실이 노인들을 위해서 한 배려라는데 표창장이라도 주고 싶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용실 주인 박정은(57)씨는 "동네에 어르신이 많아 버스를 기다릴 때 편히 쉬다 가시라고 그늘과 의자를 마련했다"며 "처음엔 의자를 집어가는 사람이 있어 고민이 많았는데 주민들에게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니 계속 사다 놓게 되더라"고 웃음 지었다.◆ 내가 너의 그늘이 되어줄게114년 만에 찾아온 살인적인 더위에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은 행인에게 소중한 피난처가 된다.

이들을 위해 기꺼이 가게 앞 그늘을 내어주는 가게들이 있다.

서울 종로구 명륜길의 음식점 김밥친구 앞에는 마을버스 정류장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10분~15분 간격으로 마을버스가 다니는데 주변이 대학가라 유동인구가 많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14일 강렬한 태양을 피해 사람들은 김밥집 주위를 둘러싼 천막 안으로 삼삼오오 발걸음을 옮겼다.

김밥집 안에서 보면 버스를 기다리는 바깥사람들만 보일 정도라 장사에 방해가 될 법도 했다.

가게 앞을 둘러싼 시민들로 장사에 불편은 없는지 주인에게 물었다.

11년간 김밥집을 운영했다는 박상삼(57)씨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게 당연하게 됐다"며 "잠깐 머물다 가는데 시원하게 있을 수 있으면 난 좋다"라고 답했다.

이어 "가게 천막이 더울 때나 비 올 때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데 버스 기다리면서 김밥을 사러 들어오기도 하고 이 정도 배려는 당연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버스를 기다리던 대학생 김민호(24)씨는 "버스를 기다릴 때면 그늘을 찾아 가게 쪽에 붙게 된다"며 "더위를 피할 수 있어 항상 감사하다"고 김밥집에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어르신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지난해 화제가 된 서울 관악구의 핫도그집도 올해 다시 안내문을 붙였다.

낙성대역 인근에 있는 이 핫도그 집은 노인들에게 ‘에어컨을 틀어놓았으니 안 사 드셔도 쉬다 가시라’고 안내하고 있다.

핫도그집 사장 김승태씨는 "어르신들이 여름에 덥게 서 있는 모습,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러웠다"며 "거창한 건 아니지만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안내문을 붙였다"고 했다.◆ 내가 너의 양산이 되어줄게더위에 지친 행인들을 위해 서울 시내에 양산을 가져다 놓은 이도 있다.

‘뜨거울 때 꽃이 핀다’라는 설치미술로 알려진 이효열 작가다.

이 작가는 지난 7월 말부터 서울 종로구 일대 그늘막 8곳에 100여개의 양산을 설치했다.

더위에 지친 행인들이 잠시라도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다.

그는 "그늘막 쉼터에 앉아 있다가 맞은편으로 건너가야 하는데 너무 더웠다"며 "그때 집까지 바래다줄 수 있는 그늘이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양산을 가져다 놓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 작가가 처음 상상한 것은 ‘공유 양산’이었다.

양산함에는 "너무 더우면 누구나 양산 쓰셔도 돼요"라고 써 있다.

반납도 사용자의 양심에 맡긴다.

하지만 모든 양산이 돌아오진 않았다.

현재 제자리에 남아있는 양산은 100여개 중 10여개 수준. 이 작가는 "양산을 사용한 뒤 며칠 뒤에 가져다 놓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며 "내년에도 양산을 제공하는 ‘우리의 그늘’ 프로젝트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 시흥시는 이 작가의 공유양산 프로젝트를 시 차원에서 도입하기로 했다.

시는 시민들이 따로 양산을 기부해서 함께 공유하는 식으로 ‘우리의 그늘’ 프로젝트를 함께하기로 했다.◆폭염에 그늘막 수요 폭발…물안개·스마트센서·양산 등 진화도114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잇따르자 지자체도 ‘그늘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그늘 하나만으로 주변 온도를 2~3도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5개 자치구 1256개소에 그늘막 쉼터를 설치한 상태다.

2013년 서울 동작구가 최초로 도입한 폭염 그늘막은 천막 형태였다.

기둥을 모래주머니에 고정해 횡단보도 일대에 설치했다.

길거리에서 더위와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점에 시민들은 그늘막 안으로 모여들었고 소문이 확산하며 그늘막은 전국적으로 확산했다.

현재 전국 지자체들은 너나 할 거 없이 그늘막을 도입하고 있다.◆ 그늘막의 변신, 천막→파라솔그늘막 설치에 난관도 있었다.

비바람, 강풍에 천막이 날아갈 수 있고 도로 사이 운전자 시야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그늘막을 ‘도로 부속 시설물’로 지정하고 ‘그늘막 설치와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그늘막의 합법적인 안전기준을 정한 것이다.

가이드라인에는 강풍에 견딜 수 있고 운전자의 시야에 방해가 돼선 안 된다는 기준이 담겼다.

이에 따라 그늘막은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변신했다.

최근 그늘막은 운전자 시야를 방해하지 않기 위한 파라솔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지탱하는 기둥도 땅에 박혀있어 쉽게 뽑힐 수 없게 했다.

가림막 크기는 3~5m로 넓어졌고 무게도 150kg 수준으로 무거워졌다.◆ 그늘막 수요 폭발…쿨링포그, 감지센서, 양산탑재 진화특히 올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국적인 그늘막 수요가 폭발했다.

천막 형태의 그늘막과 달리 파라솔 형태의 그늘막은 특정업체에서만 생산하는데 두 곳에 불과해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전국 곳곳에 그늘막 설치가 지연되고 있다는 지자체의 사과문이 붙은 이유다.

서울시에 따르면 집 앞에 그늘막을 설치해달라는 민원도 빗발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늘막에 부가기능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강북구는 그늘막에 물안개를 내뿜는 쿨링포그(Cooling Fog) 기능을 추가했다.

물을 뿌려 주변의 온도를 더욱 낮추겠다는 것이다.

대구광역시는 이에 더해 스마트 그늘막을 설치했다.

그늘막에는 풍속, 기온, 조도 감지 센서가 부착돼 초속 8m 이상의 바람이 불거나 기온이 10도 이하일 때, 또 일몰 후 어두워졌을 때 그늘막이 자동으로 접히도록 했다.

경기 시흥시는 시민들이 걸으면서도 태양을 피할 수 있도록 그늘막에 공유 양산을 비치했다.

양산은 시민들의 기부로 비치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폭염에 따라 그늘막의 수요가 전국적으로 폭발적"이라며 "현재 서울시 내 1256개의 그늘막이 설치됐고 213개소는 설치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