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 다음 날의 점심 때였다.

우연히 여성 기자들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한 기자가 "드라마 보는 거 있으세요?"라며 화제를 던진다.

"(tvN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요"라고 답하며 대화의 물꼬를 텄다.

드라마는 그간 다룬 적 없던 구한말 격변의 조선을 살아간 의병들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역사적 오류 논란이 있지만, 이와 별개로 '여성 독립 운동'을 조명해 신선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극중 양반집 애기씨인 고애신(김태리 분)은 부(富)의 안락함 대신 '총포'를 선택한다.

여성으로서 남장을 한 채 거침없이 벽을 타며 서슴없이 총구를 겨눈다.

그런 애신에게 스승 장포수는 "넌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애신은 "조선은 아녀자에게 잘 못한다"며 "나는 스승의 편"이라고 답한다.

독립운동은 곧 남성이란 고정관념을 깨트린다.

문재인 대통령도 역사 속에 묻힌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불러냈다.

지난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발굴하지 못하고 찾아내지 못한 독립운동의 역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특히 여성의 독립운동은 더 깊숙이 묻혀왔다"며 "여성들은 가부장제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으로 이중삼중의 차별을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이윽고 낯선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1931년 일제의 일방적인 임금삭감에 반대해 높이 12m의 을밀대 지붕에 오른 평양 평원고무공장의 여성노동자 강주룡, 1932년 제주 구좌읍에서 일제의 착취에 맞선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등 해녀 5명 등을 상기시켰다.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유족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도 "앞으로도 여성은 물론 학생, 의병까지 후세들에게 널리 기억되고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 발굴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공언한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여성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다.

내각의 여성 장관 비율을 30%로 늘리고, 임기 내 5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이에 따라 18개 정부 부처 가운데 외교부 등 5개 부처 장관(28%)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지난 1년 간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온 국민청원 중 가장 많은 답변을 받은 분야는 여성인권이다.

'몰카 범죄'와 관련해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여러 차례 강경 대응을 지시했다.

그런 문 대통령을 여성들은 지지했다.

취임 초 성별·세대별 지지율을 보면, 2030세대 여성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대선 당시 유세 현장에서 만난 여성들은 남성의 전유물로 상징됐던 정치의 주체로서 살아 움직였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장기간 지속될 각인인지 분명하지 않으나, '한국 정치의 균열구조'가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 균열이 지지층에서 감지된다.

지난 3일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 성별로는 여성의 지지율이 10%포인트 가량 하락했다.

심지어 광복절 당일 '문 대통령 탄핵'을 내건 여성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다.

남성 혐오 커뮤니티로 알려진 '워마드(1020세대 주축)' 회원들이었다.

물론,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분분하다.

극단적 우월주의로 비판하는가 하면 사회운동의 집약적인 발전 과정으로 분석하는 이들도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성평등한 민주사회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국민의 기본적인 요구에 답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독립 운동가 '애신'과 '워마드 아무개'. (정치적 판단은 유보하고) 둘 모두 '여성'이란 공통 분모를 갖는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남녀 차별과 혐오, 불신을 넘어 '전체 여성'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