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속으로] 이웃 지자체 간 분쟁 현장을 가다올해 개봉해 50만명 가까운 관객을 불러들인 이준익 감독의 영화 ‘변산’은 전북 부안군이 무대다.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 분)가 고향인 부안군 변산면으로 내려와서 짝사랑 선미(김고은 분), 옛 친구들과 펼치는 예측불허의 사건을 유쾌하게 그려냈다.

영화 촬영지인 부안읍 중심가의 ‘물의 거리’와 채석강, 새만금 등이 일약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그 부안군이 요즘 이웃 지방자치단체인 전북 고창군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안군과 고창군 둘 다 서해안을 해안선으로 삼고 남북으로 인접한 지자체인데 해상경계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지가 다툼의 원인이 됐다.

고창군이 부안군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면서 올해 안에 헌재 재판관들이 결정을 내릴 것인지가 두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전북 해상에 풍력발전단지 개발키로 한 것이 원인22일 헌재 등에 따르면 이 사건의 발단은 정부가 지난 2010년 11월 서남해 해상에 2.5GW(기가와트) 규모의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를 단계적으로 개발하는 ‘해상풍력발전단지 종합추진계획’을 발표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계획에 따라 2012년 12월 한국해상풍력 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6년 3월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 건설사업’을 위한 전원개발사업 실시계획 승인을 고시하며 발전시설 위치를 ‘전북 부안군 바다’ 또는 ‘부안군 소재 공유수면’이라고 표시했다.

이를 근거로 부안군이 한국해상풍력의 공유수면 점·사용 신고를 수리하고 이후 공유수면 점·사용료 부과 처분을 내리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고창군은 "해당 공유수역은 우리 군 앞바다로 부안군의 처분은 고창군의 자치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부안군과 고창군 간의 해상경계선을 명확히 해달라"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낸 것이다.

관할권 다툼이 벌어진 바다는 고창군의 육지 연장선상에서 볼 때 앞쪽 바다에 위치해 있다.

동시에 부안군 소속 섬인 위도의 남방 해역에도 해당한다.

바로 이 점이 고창군이 "부안군이 아니고 우리 군에 속한 바다"라고 주장하게 된 주요 원인이다.

위도는 원래 전남 영광군에 속해 있다가 5·16 쿠데타 직후인 1963년 1월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북 부안군의 관할구역에 편입됐다.◆헌재 "관습법상 해상경계 존재 여부가 우선"지자체들 간의 해상경계선 분쟁과 관련해 헌재는 과거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한 ‘국가기본도’에 표시된 해상경계선을 불문법상 해상경계의 기준으로 인정해왔다.

국가기본도에 해상경계선이 표시되지 않는 부분은 별도의 관습법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가기본도에서 합리적으로 추단할 수 있는 해상경계선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그러던 것이 박한철 전 헌재소장 재임 시절인 2015년 7월 선례 변경을 통해 새로운 해상경계 획정 기준을 마련했다.

해상경계에 관한 성문법이 있으면 당연히 그에 의해 정할 것이나, 국내에 지자체 해상경계에 관한 명확한 법령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불문법, 즉 관습법상 해상경계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불문법의 해상경계는 주민들 및 행정관청의 관행의 존재, 오랜 기간 동안의 반복, 법적 확신 등이 있으면 성립한다.

만약 불문법의 해상경계도 확인이 불가능하다면 ‘형평’의 원칙에 따라 경계를 획정해야 한다.

헌재는 "두 지자체에서 똑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중간지점을 경계선으로 삼는다는 ‘등거리 중간선 원칙’을 기본으로 하되 섬 면적, 인구 수, 거주 현황 등 그 밖의 지리적 조건이나 행정권한의 행사 연혁, 사무처리 실상, 주민들 편익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재판관이 직접 현장검증도… 주민들 간 갈등 확산헌재는 2016년 접수한 이 사건을 2년가량 심리해왔다.

지난 10일에는 직접 고창군과 부안군 일대를 찾아 약 2시간30분가량 현장검증도 실시했다.

헌재를 대표해 서기석 재판관이 부안군 격포항을 둘러보고 부안군 위도 대리항에서 부안군 입장을 들은 다음 해상풍력단지 현장을 확인하고 다시 고창군 구시포항으로 이동해 고창군 입장을 청취했다.

현장검증에서 부안군은 권익현 부안군수를 필두로 군청 및 군의회 관계자, 어업인 대표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권 군수가 직접 서 재판관을 상대로 브리핑을 했다.

부안군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바른 김치중, 허경범 변호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해상풍력단지 건설로 막대한 개발이익이 예상되자 고창군이 뒤늦게 ‘자기네 바다’라며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창군도 유기상 고창군수를 비롯해 군청 및 군의회 관계자, 어업인 대표 등 80여명이 참여했다.

유 군수가 직접 서 재판관을 상대로 브리핑을 했다.

고창군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 지기룡, 서진권, 권종현 변호사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과거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국가기본도의 해상경계선이 고창군에 불리하게 그어졌다"며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 관계자는 "2015년 새로 확정된 해상경계 기준을 바탕으로 고창군과 부안군 간 불문법적 해상경계 성립 여부와 다툼의 대상이 된 해역의 지리적 조건 등을 직접 확인하고자 현장검증을 했다"며 "두 지자체 간 해상경계를 보다 합리적으로 획정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르면 올해 안에 결정을 선고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