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0년차 주부 박모(53·여)씨는 추석연휴를 하루 앞두고 걱정이 먼저 든다.

시댁과 친정을 5일간 오가며 명절음식을 준비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손목이 욱신거리기 때문이다.

시댁에서는 ‘나홀로’ 며느리이자 친정에 올케가 한 명도 없는 박씨는 명절만 되면 가사노동을 전담해왔다.

처음에는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해 20대 조카가 소파에 앉아 "전을 더 부쳐달라"는 말을 듣고는 왈칵 눈물이 났다.

지난 세월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박씨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내 삶은 여전히 똑같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2018년은 여성 운동이 어느 때보다 활발한 해였다.

‘미투운동’이 촉발한 페미니즘 열풍은 여성들을 광장으로까지 이끌었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 대한 경찰의 편파수사 논란 이후 4번의 대형 페미니즘 집회도 있었다.

이를 두고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억압 받던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박씨처럼 추석 연휴간 여성들이 느끼는 생활 속 성차별은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오늘날 한국의 여성 운동이 특정 이슈나 소수 사례에 너무 초점을 맞춰 실생활에 만연한 여성 인권 침해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남녀불평등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다.

21일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시민 1170명 중 여성 88.8%가 "명절에 성차별적 관행을 겪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53.3%는 대표적인 성차별 사례 1위로 ‘여성만 하게 되는 가사노동’을 선정했다.

남성 43.5%도 이에 동의했다.

이외에 여성들은 ‘결혼 간섭’(8.9%), ‘여자가, 남자’(7.9%)가 발언, ‘남녀 분리 식사’(6.5%), ‘외모 평가’(4.7%) 등을 성차별 사례로 꼽았다.

시민들은 성 역할 인식 변화의 구심력이 페미니즘 운동에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여성의 권익보다 반남성적 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한 최근의 행보들은 대중들의 외면을 받기 일쑤다.

실제로 페미니즘 시위 구호로 고인을 능욕하는 단어를 외치거나, 집회 때 지나가는 남성 행인들에 대해 야유를 하는 행위 등은 여성 인권 신장이 아닌 남성 혐오라는 비난을 받았다.

또 일부 여성 커뮤니티에서 ‘미러링’을 이유로 대학교 남성 화장실을 불법촬영해 인터넷 공간해 업로드하자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많은 여성들은 과격하고 공감 받기 어려운 구호로 페미니즘 운동을 하기보다는 실생활에서 피부로 느껴지는 악습을 타파하는 게 먼저라고 주장한다.

직장인 이모(29·여)씨는 "원론적으로 남녀평등에는 동의하지만 경찰 성비를 여성 9 대 남성 1로 하자는 등의 시위 구호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며 "오히려 ‘명절 가사노동 남녀가 공동 분담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면 나부터 집회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대학생 윤모(20·여)씨도 "여성운동에 굳이 고인을 비하하는 단어나 남성을 혐오하는 ‘한남충’이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처한 현실을 비판하기는 대신 남녀성대결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고개를 저었다.

전문가들도 여성 운동이 대부분의 여성들이 느끼는 일상 속 남녀불평등 문제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봉석 성균관대 초빙교수(사회학)은 "페미니즘 시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일상생활과 밀접한 남녀 불평등 문제에 더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도 "일상생활에서의 민주화나 갑질 타파가 중요하듯 성불평등 문제 해결도 일상생활에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사진=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