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체 에쓰오일이 화학업체가 주도해 온 에틸렌 사업에 뛰어든다.

이를 위해 에쓰오일은 4조8000억 원을 투자해 NCC(나프타분해시설) 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NCC는 원유 증류로 생산된 나프타를 800도 이상 고온으로 분해해 에틸렌, 프로필렌, 부티렌 등 화학 물질을 생산하는 설비를 뜻한다.

이 가운데 에틸렌은 합성수지, 섬유 등 각종 화학제품 원료로 사용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화학업계 규모를 에틸렌 생산량으로 판단하는 게 관례다.

에쓰오일은 NCC 사업을 통해 에틸렌 생산량을 오는 2023년까지 국내 4위 수준인 연간 150만톤으로 늘릴 방침이다.

국내 화학업체 가운데 에틸렌 생산규모가 1위인 업체는 LG화학(220만톤)이며 2위는 롯데케미칼(210만톤), 3위는 여천NCC(195만톤)이다.

에쓰오일은 또한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매입한 울산 온산공단 내 40㎡ 부지에 오는 2023년까지 4조8000억 원을 투자해 연간 150만톤규모의 잔사유 고도화 설비(RUC)와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ODC)를 세울 계획이다.

RUC와 ODC는 원유 정제 후 발생하는 나프타와 부생가스를 다시 원료로 투입해 에틸렌 등 석유화학 원재료를 생산하는 설비다.

이는 화학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NCC 사업중 하나다.◆ 에쓰오일, 5년후 공급과잉 시장에 왜 뛰어드나관련 업계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에쓰오일이 NCC 공정을 마무리하고 양산화하는 시점인 2023년에는 국내 에틸렌 생산량이 현재보다 70% 가량 급증해 공급 과잉을 초래하는 '레드오션'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정유업체들이 화학사업에 잇따라 진출하는 점도 에틸렌 공급 과잉을 부추기고 있다.

국내 정유업체 가운데 현재 유일하게 자체 NCC 공정을 보유 중인 SK이노베이션을 제외하면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가 에틸렌 생산공정에 뛰어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GS칼텍스는 올해 2월 2조6000억 원을 투자해 에틸렌 7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올레핀 생산시설을 구축하기로 했으며 현대오일뱅크는 올해 5월 롯데케미칼과 손잡고 2021년까지 에틸렌 75만톤을 생산하기로 했다.

여기에 에쓰오일이 4조8000억 원을 투자해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의 에틸렌 생산량보다 2배 이상 많은 15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하게 되는 셈이다.

공급 과잉 우려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존에 에틸렌 공급을 도맡았던 화학업체들도 NCC사업에 대규모 증설을 예고하고 있다.

LG화학은 2조6000억원을 투자해 2021년 하반기부터 여수공장에서 에틸렌 80만톤을 생산할 예정이다.

이에 질세라 롯데케미칼은 올해 말까지 450만톤 규모 생산시설을 갖추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여천NCC도 2020년까지 연간 에틸렌 생산능력을 현재 195만톤에서 230만톤까지 늘리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올해 8월 기준 연간 928만톤 수준인 국내 에틸렌 생산량은 각 업체들이 발표한 설비가 완공되는 시점인 2023년이면 1559만톤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에틸렌 생산 규모가 곧 화학업체의 순위를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꼽힐 만큼 에틸렌에 대한 수익성이 좋은 상황이다"며 "그러나 정유와 화학업체를 막론하고 국내 업체들이 잇따라 에틸렌 공정 설비 계획을 발표하고 있어 차후 공급 과잉으로 인한 수익성 하락이 점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까지 언급된 증설이 마무리되면 국내 에틸렌 생산량이 월 110만톤 수준으로 늘어난다"며 "세계 최대 에틸렌 생산국인 중국의 월간 생산량이 140만톤 내외임을 감안하면 국내 에틸렌 시장은 공급과잉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에쓰오일 수익 악화 전망에도 에틸렌 강행 논란이같은 전망에도 에쓰오일은 NCC사업을 통한 에틸렌 자체 생산이 주력 사업인 정유 부문보다 향후 수익성이 높다고 판단하며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그간 정유사인 에쓰오일에 NCC 사업은 일종의 '부업' 수준이었다.

에쓰오일은 해외로부터 들여온 원유를 정제한 뒤 발생한 휘발유와 경유를 시장에 판매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나프타와 부생가스 등은 화학업체 LG화학, 롯데케미칼, 여천NCC, 대한유화 등에 공급해 왔다.

화학사들이 필요로 하는 원료를 공급하는 '공급처 역할'만 해온 셈이다.

에쓰오일의 화학사업 진출은 정유 부문에 쏠려 있는 수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에쓰오일은 정유와 윤활유, 석유화학부문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실적 비중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에쓰오일의 총 매출액은 정유부문이 79.3%의 비중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석유화학부문은 14.7%에 불과하다.

영업이익도 정유부문에서 60%가 나온 반면 석유화학 부문은 1.5%에 그쳤다.

다만 정유 분야는 국제 유가와 환율 변동 등 대외변수에 취약해 대내외 경제 흐름에 따라 실적이 요동친다.

실제로 에쓰오일의 지난해 하반기 정유부문 매출은 78.5%, 석유화학부문은 14.5%를 기록했으나 같은 기간 정유부문 영업이익은 전체 영업이익 중 0.5%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석유화학부문 영업이익은 에쓰오일이 거둔 총 영업이익 중에 47.1%에 달했다.

결국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위해 공급과잉 논란에도 비(非) 정유부문인 석유화학 부문에 눈을 돌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