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정전협정 체결 당시 ‘그 해 내’에 하기로 했던) 전쟁을 종식한다는 정치적 선언(종전선언)을 먼저 하고, 그것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평화협상의 출발점으로 삼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때 평화협정을 체결함과 동시에 북·미관계를 정상화한다."문재인 대통령이 20일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 남북정상회담 메인프레스센터 대국민보고 기자회견에서 밝힌 종전선언과 비핵화, 평화협정 체결의 로드맵이다.

이 로드맵은 "이번에 남북간 체결한 군사협정이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북·미간 (핵 문제를 두고) 적대관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끼리만 군사적 긴장을 완하하는 게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다룰 때 일반적으로 비핵화로 가는 과정은 ‘선(先) 비핵화, 후(後) 군사적 긴장 완화(군비통제)’로 이해됐다.

핵 위협이 상존하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부터 먼저 완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이 논리를 뒤집었다.

먼저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비핵화로 나아간다는 논리다.◆"군사적 긴장완화, 긴장 상존하는 한반도 문제 출발점"정전협정 60조4항에서는 "정전협정이 조인되고 효력을 발행한 후 3개월 이내에 각기 대표를 파견하여 쌍방의 한 급 높은 정치회담을 소집하고 한국(북한)으로부터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국(북한)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를 협의할 것을 건의한다"고 되어 있다.

3개월 이내에 정전체계를 종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전체제는 65년간 지속되고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23일 "핵이 있어 6.25 전쟁이 발발하고 한반도에 평화가 없는 것인지, 전쟁이 나고 한반도에 신뢰와 평화가 없기 때문에 핵문제가 생기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북간 신뢰구축을 바탕으로 65년간 지속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비핵화 문제를 함께 다뤄야 하는 것인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남북이 상시적 긴장 상태에 놓이면서 불신이 일상화됐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군사 문제는 성역화된 부분이 있다.긴장이 일상화된 공간에서는 평화체제를 만들 수 없다"며 "경제 교류에서 진전이 있어도 군사적 충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했던 과거 사례로 비추어볼 때 그 역발상으로 군사적 긴장 완화부터 시작돼야 평화협정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9월 평양공동선언은 이같은 논리가 압축된 결과다.

군사적 적대 관계 종식, 실질적인 전쟁 위험 제거, 근본적 적대 관계 해소가 선언 제1조에 들어가 있다.

또 군사분야 이행합의서를 부속서로 채택해 단계적 군축 협의 기구로 군사공동위를 설치토록 했다.◆‘가보지 않은 길’…계속되는 우려‘비핵화가 있어야 군축이 있다’는 기존 논리에서 보자면 남북은 ‘검증된 적 없는 새로운 길’로 접어든 셈이다.

이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NLL 포기론’ 등 이번 합의 관련 끊이지 않는 잡음도 비핵화 이전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가 우선되는데 대한 거부감이 한 몫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사적 신뢰구축이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새로운 실험의 성공여부를 떠나, 기존 한미동맹 체제에서 이번 합의를 이행하는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계속된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JSA 비무장화 등은 기존 정전위와의 관계 설정을 명확히 해야 한다.유엔사 관할지역 내에서의 군사적 긴장완화는 3자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라며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는) 정전협정을 바탕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정전위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은 "불필요하게 높아진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면서도 "(북한의 비핵화 이전 군비통제가) 자칫 한국의 기존 안보체제 무력화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일 대국민보고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이 있어도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유엔사 지위라든지 주한미군 주둔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