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고수… 南北 중요 합의 때마다 발목 잡아한국과 미국이 남북 관계와 비핵화의 속도 조절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한국은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한의 비핵화가 반드시 동시에 진행될 수는 없다며 남북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은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은 남북 도로·철도 연결 추진 등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굵직한 합의가 이뤄질 때마다 한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이것이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는데 ‘약’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이와 정반대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 관계만 개선되면 이것이 비핵화를 막는 ‘독’이 될 것이라고 반박한다.

한·미 간 갈등의 핵심은 대북 제재 이행 문제이다.

남북 경협 프로젝트 등 남북 관계 개선이 이뤄지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가 완화돼야 한다.

한국이 유엔 회원국으로서 안보리의 결의를 위반한 채 남북 경협을 추진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한·미 양국은 이 때문에 대북 제재 완화 또는 해제의 방법과 시점을 놓고 입장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역적인 상태에 진입하면 대북 제재를 완화함으로써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러나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원칙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대북 제재를 해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한 비핵화 견인론조윤제 주미 대사는 16일(현지시간) 남북 관계 진전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진척시킬 수 있다는 ‘비핵화 견인론’을 제기했다.

조 대사는 이날 워싱턴 DC에서 세종연구소와 미 외교협회(CFR)가 공동으로 주최한 ‘서울-워싱턴 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남북 관계와 비핵화가 항상 기계적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줄곧 주장하고 있는 남북 관계와 비핵화 ‘동시 진행론’에 대한 반박이다.

조 대사는 "남북 관계가 비핵화 과정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대북 제재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 진전이 비핵화 과정에 따라 진행돼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제 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조 대사는 그러나 "남북 관계와 비핵화가 항상 기계적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없는 없다는 것 또한 우리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사는 "한쪽의 모멘텀이 다른 쪽 프로세스를 견인해 선순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대사는 "남북 관계가 북·미 협상보다 조금 앞서 나가면 한국이 레버리지를 가지고 촉진자의 역할을 해 북·미 협상의 정체를 풀어내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사는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의 디딤돌이 되고, 평양 남북 정상회담이 북·미 협상을 재가동시킨 예를 볼 때 남북 관계 트랙과 비핵화 트랙이 서로 추동하면서 이 프로세스를 계속 진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사는 다만 "남북 협력은 국제 제재의 틀 내에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미국의 대북 제재 시스템 붕괴론미국은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도로·철도 연결과 현대화를 위한 착공식을 이르면 11월 말 개최하기로 합의하자 남북 관계 진전의 속도 조절 필요성을 제기했다.

미국 국무부는 15일(현지시간) 남북 관계와 북한 비핵화 문제의 진전이 함께 가야 한다며 유엔 회원국들의 제재 이행을 강조했다.

국무부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대로 남북한의 관계 개선 문제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해결하는 것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모든 회원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따라 금지된 분야별 제품 거래 제한을 포함해 유엔 제재를 완전히 이행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국가가 북한의 불법적인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끝내는 것을 돕기 위해 자국의 책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 완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이에 가세하면 미국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를 잃어버릴 것으로 우려한다.

중국 등이 안보리 제재 시스템을 무력화하면 북한의 대외 거래에 문제가 없고, 남북 경협을 통해 한국으로부터 실질적인 경제 지원을 받으면 핵·미사일을 내걸고 미국과 협상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게 미국 측 주장이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