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계리 사찰 진전된 조치 아냐 / 北·美 정상회담도 성과 불분명 / 北살라미 전술·美전략 평행선 / 韓, 화려한 외교무대 도취 금물올해 들어 한반도 정세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일단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반년 안에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성사됐으며, 미국 국무장관은 과거 정부 집권기간에 한 번 가기도 힘들었던 북한을 네 차례나 드나들었다.

북한의 거듭된 핵·미사일 실험으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던 한반도에서 평화를 꿈꿀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됐다.

북·러 정상회담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그리고 북·일 정상회담까지 예상할 정도로 활발한 주변의 외교 움직임이다.

그렇지만 화려한 외교무대 뒤에서 정작 북한 핵 문제는 외화내빈(外華內貧) 속에 장기화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북핵 해결은 여전히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다.

지난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서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의 불가역적 폐쇄를 검증할 사찰단을 ‘초청’했으나, 이는 이미 취했던 조치에서 더 나아간 것이 아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나 북핵 사찰 문제를 다룰 북·미 실무회담이 개최된다 해도 얼마나 구체적 성과를 거둘지도 불확실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4차 방북 전 ‘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목표에 도달하면 중국도 평화협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폼페이오 장관의 7시간 남짓 짧은 평양 일정과 일본-평양-서울로 이어진 동선은 실질적 담판보다는 북한과의 협상 틀 유지와 대북 경제제재 협력 체제 단속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북·미는 모든 안건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 ‘끝장 토론’을 통해 필요한 조치에 대한 동시행동의 시간 일정을 일괄 타결하고, 그 내용을 한국과 중국 등의 주변국이 보증하는 실효성 있는 방안에 인색하다.

그보다는 속내를 숨기고 하나씩 패를 내밀어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는 ‘게임’ 방식을 택하고 있다.

미국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야 ‘완전한 비핵화’로 갈 수 있다는 북한의 ‘살라미 전술’이나, 먼저 FFVD를 확인해야 경제제재 해제와 평화협정이 가능하다는 미국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다.

북한은 핵 폐기 없이 유화적 이미지와 적극적 외교, 남북교류 확대를 통해 미국의 군사행동을 예방하고,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는 지지와 지원을 끌어낸다는 전략이다.

또 ‘완전한 비핵화’의 모호한 개념을 활용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핵 군축 쪽으로 협상을 유도하려는 심산이다.

한편, 어차피 단기간에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면, 미국은 상황 관리를 통해 한반도에서의 군사 및 경제 이익과 중국 견제 효과를 도모하고, 중국은 미국과 한국에 대한 전략 카드로 북한을 활용할 것이다.

어쩌면 애태우는 한국을 제외하고는 북한과 주변국 모두가 결정적 파국이나 어느 일방에 유리한 문제 해결보다 한반도에서 ‘적정’ 수준의 긴장을 유지함으로써 차선의 이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북·미는 제각기 현실 정치에서도 괜찮은 손익계산서를 쥐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의한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정상회담임을 내세워 1990년대 이후 고난의 행군과 핵 개발로 인해 ‘대를 이어’ 주민들이 겪어온 고통과 긴장이 드디어 풀릴 수 있다는 착시 효과를 거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작년 말 초긴장 상태에 빠졌던 한반도에서 북한의 도발을 중단시키고,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끌어냄으로써 과거 정부와는 달리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정치 자산을 불렸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에 전력을 기울였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길을 트고, 북핵 해결은 북·미 간 타협으로’라는 역할 분담론에 따른 노력이다.

그러나 북핵의 장기화야말로 한국의 중재 노력과 진정한 남북 교류협력,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막는 반민족적 결과를 초래한다.

절박한 우리 문제이며, 북·미만의 협상 의제가 아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대북제재의 균형을 잡고, 북핵 해결 로드맵에 대한 북·미 간의 일괄타결과 주변국의 보증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

급변하는 한반도의 안보지형 속에서 화려한 외교무대에 도취해 북핵이 외화내빈의 늪에 빠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지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