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다크투어’가슴을 헤집는 아픈 경험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진다.

다시는 그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기에 애써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한 구석의 응어리들이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파며 생채기를 낸다.

그럴수록 마음속 한구석에 더 강하게 각인된다.

시간이 흐르면 날 선 응어리들이 무뎌지고, 생채기는 굳어 단단해진다.

잊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무뎌져서 둔해질 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생채기가 조금이라도 나으려면 힘들게 홀로 버티기보단 주위의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

역사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

자랑스럽고 널리 알리고 싶은 역사를 많이 기억한다.

익숙한 여행지 대부분이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는 화려한 외형을 가졌거나 큰 공적을 남긴 곳이다.

반면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좋지 않은 감정으로 기억하는 역사도 있다.

이를 되새김질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한다.

아픈 역사와 관련된 장소들은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분명 우리 역사의 일부지만, 점차 기억에서 잊힌 역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역사보다는 이런 불편한 역사에 더 많은 공감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기억해야만 이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여행에서 받는 감동의 크기도 오히려 이런 숨기고픈 역사를 알게 됐을 때 더 클 수 있다.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은 아무래도 주목을 덜 받게 된다.

육지에서 떨어진 곳이니 관심 밖의 지역이 된다.

하지만 경남 거제는 다른 섬과는 다르다.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 거제도다.

우리 역사의 굵직한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섬이라는 존재가 다른 곳보다 험난한 삶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니, 이 사건의 흔적들 역시 아무래도 무겁게 다가온다.

낭만적이고 수려한 풍경이 먼저 떠오르는 섬이지만, 그 이면엔 아리고 쓰린 역사의 흔적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다크투어리즘’의 대표적인 장소 중 한 곳이 거제다.◆또 다른 이념전쟁터 포로수용소"저 지붕 위에 있는 인공기를 봐라. 사람을 죽여서 그 피로 깃발을 만든다."친공포로가 몰려 있던 수용소에서 도망친 반공포로가 가리킨 깃발은 빛깔이 자색으로 변색했고, 피가 굳어 기폭이 뻣뻣해져 바람에 잘 나부끼지도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공포로와 친공포로 사이에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포로수용소이기에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다.

곤봉, 도끼, 철조망을 감은 대나무 막대기, 망치 등 수제 무기를 이용한 충돌이 벌어져 전장이 따로 없었다.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기에 부산 등은 북한군에 점령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래 거제는 전방의 전장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당시 거제 인구는 10만명 정도였다.

북한군 전쟁포로 17만명과 포로를 경비하는 부대병력, 행정인원 등을 합쳐 인구의 세 배에 이르는 30만명가량이 머물렀다.

이념 성향이 구분되지 않은 채 한 막사에서 생활하던 포로들은 이념에 따라 수용소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의 살벌한 투쟁을 벌였다.

전 국토가 이념 대결의 전쟁터였지만, 거제도 수용소 안에서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북한군 포로들을 가뒀기에 반공포로들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충돌에서 죽은 이들은 ‘허니 바께스’라 부르던 ‘똥통’에 담겨 바다에 버려졌는데, 얼마나 많았는지 수용소 앞바다에 물고기떼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포로를 관리하던 미군 등은 직접적인 피해나 대규모 충돌이 발생하기 전까지 사실상 방관했다.

그런 사이 승자 없는 전쟁이 수용소 안에서 이어진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서 수용소는 폐쇄됐지만, 지금도 당시 잔존 건물 등 흔적이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남아 있다.

전쟁 후 방치되던 수용소는 90년대부터 자료를 수집하고, 유적관 등을 지어 전시공간으로 개관했다.

탱크전시관, 무기전시장 등 전쟁과 관련된 기본적인 전시관 외에 당시 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과 생활상 및 폭동현장 등을 재현한 디오라마관, 포로생활관, 포로들 간 대립을 매직비전으로 보여주는 포로사상대립관,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간의 격돌 장면을 재현한 포로폭동체험관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다만, 전쟁 후 주민들이 생활해 공원에 남은 당시 건물은 거의 없고, 재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오히려 공원에서 계룡산 정상부근까지 40분 정도 모노레일을 타고 오르면 당시 흔적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바로 통신부대가 사용한 건물이 있다.

이 역시도 제 모습이 아닌 돌로 쌓은 건물 형태만 남아 있다.

이를 둘러본 뒤 이어진 전망대에 서면 추수를 앞둔 황금빛 들판과 푸른 남해, 거제 시가지 풍광에 빠져든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구석을 아리게 하던 불편함을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을 보며 달랠 수 있다, ◆애처로운 역사를 품은 바다와 성6·25 전쟁만 하더라도 오래 지나지 않은 역사여서 당시의 흔적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지만, 그 이전으로 가면 과거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역사 기록 등으로 당시의 상황을 그려볼 뿐이다.

섬들로 이루어진 거제 북쪽에 칠천도라는 섬이 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정유재란 시 우리 수군이 유일한 패배를 기록한 전투가 이곳에서 있었다.

전승을 거둔 이순신 장군이 이끈 전투가 아니다.

당쟁에 휘말린 이순신 장군이 하옥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였던 때 벌어진 전투다.

조정의 출전 명령에 원균은 통영 한산도에서 160여척의 배를 이끌고 왜군 본진이 있는 부산을 급습하기 위해 출항한다.

하지만 이를 미리 탐지한 적들의 작전에 말려 후퇴하다 칠천도에서 휴식을 취한다.

이때를 노리고 기습한 왜군에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 물길 칠천량에서 대패한다.

‘량’은 좁은 물길을 뜻한다.

육지로 탈출한 원균마저 일본군의 추격에 전사하고, 경상우수사 배설이 12척의 배를 이끌고 남해 방향으로 후퇴한다.

이 전력이 백의종군하다 다시 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을 앞두고 말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의 그 배다.

우리 수군의 유일한 패배였던 칠천량해전에서 수군 전력 대부분을 잃은 것이다.

해전이 벌어진 칠천도에 칠천량해전공원과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공원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섬으로 둘러싸여 호수처럼 잔잔하다.

풍랑 피해가 적어 호수 같은 바다엔 수많은 양식장 부표가 떠 있고, 배 한 척이 한가로이 지나간다.

거제 어느 바다보다 평화로움이 느껴지는 바다 아래 400여년 전 처절한 전투를 치른 이름없는 민초들의 한이 잠겨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는 힘들다.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왕 중 가장 애처로운 결말을 맞은 임금을 꼽으라면 조선시대 단종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이전 역사에도 단종만큼이나 불행한 결말을 맞은 왕이 또 있다.

고려시대 의종은 무신정변으로 폐위당한다.

폐위 후 유배온 곳이 거제의 둔덕기성이다.

일제강점기 때 폐위된 왕이 머물렀다며 폐왕성으로 불렸는데, 이후 옛 이름을 되찾았다.

이곳에서 생을 마쳤다면 그저 폐위된 왕이었겠지만, 이후 복위세력에 의해 경주로 거처를 옮긴 후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복위세력이 제압당한 뒤 의종은 자신이 총애하던 천민출신 장수 이의민에 의해 등뼈가 꺾이고, 연못에 수장당하고 만다.

이때부터 고려 무신정권 100년의 역사가 시작된다.

폐위된 왕이 머물던 둔덕기성이 있는 산은 이름도 딱히 없다.

둔덕면 거림리의 뒷산으로 불리는 산에 조성된 둔덕기성은 인근에 우두봉이 있어 우두봉 중턱에 있다고도 한다.

승용차로도 갈 수 있는 비포장길을 오르면 성벽을 만난다.

신라 때부터 있던 성을 증축했는데, 다른 성에서 보기 힘든 투석용 몽돌 무더기인 석환군이 있다.

2000여개의 돌무더기는 직접 던지기보다 투석기를 이용해 발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망대가 있는 부근에서는 바다 건너 통영 지역이 내려다보인다.

성곽에 올라 다도해가 그리는 멋진 풍광을 봤을 의종은 자신의 마지막이 그리 처참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둔덕기성에서 내려오면 인근에 청마 유치환 선생의 기념관과 생가가 있다.

청마의 삶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인데, 친일 행적에 대해선 이렇다 할 언급은 없다.

기념관 가는 길에 가을을 한가득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코스모스를 심은 꽃밭이 펼쳐져 있다.

마을 주민들이 조성한 밭으로, 가운데에 파란 말 조형물이 있다.

청마다.

국토 남단까지 그리 길지 않은 가을의 향이 한가득 퍼졌음을 느낄 수 있다.

거제에 역사를 품은 많은 성이 있는데, 이와 달리 짓기 시작한 지 15년밖에 되지 않은 독특한 성이 있다.

부산에서 거가대교 건너 만나는 대금리에 이르면 바다를 향해 차곡차곡 돌이 쌓인 성벽을 만난다.

우리나라 전통 성벽의 모습보다는 외국의 성을 더 닮았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밭이 피해를 입자 주인 백순삼씨가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해 홀로 쌓은 돌벽이다.

축대만 쌓다가 전망대, 성곽 등을 만들어 성과 같은 모습이 됐다.

화려한 이름을 달기보다 태풍에서 따와 ‘매미성’으로 이름 붙였다.

돌계단을 올라 성 내부를 둘러보거나 바다 건너 거가대교를 조망할 수 있다.

시간이 될 때 찾아와 성을 조금씩 짓기에 언제 완성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고난에 맞선 나약하지 않은 인간의 모습이 바다를 향해 서 있다.

거제=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