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학대를 견디다 결국 가출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 일본 여고생의 사연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가출 소녀들의 이야기가 최근 일본 아사히신문에 전해졌다.

학생들은 소셜 미디어(SNS)에서 하룻밤 지낼 곳을 찾는 등 힘든 생활을 이어오고 있지만 "집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비 오는 가을밤 절박한 SNS"하룻밤만 재워주실 분. 메시지로 나이와 사는 곳 남겨주세요."지난달 1일 A양은 여러 SNS 계정 중 하나를 골라 이같은 글을 남겼다.

17세인 A양은 가출 후 SNS를 통해 매일 밤 머물 곳을 구해왔다.

신문에 따르면 이런 A양에게 손을 내민 건 ‘가출소녀’라는 신분을 악용하려 몰려든 성인 남성뿐이었다.

가출 당시 단돈 4000엔을 들고나온 A양은 이들의 도움을 거부할 처지가 못 된다.

가출 소녀들의 현실은 남성들도 알고 있다.

A양은 그들의 제안에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마중 나올 남성을 기다린다.

A양의 가출은 천만다행인지 SNS 덕에 한결 수월했다고 한다.

A양은 SNS의 해시테그(#) 기능을 이용하여 ‘좋은 사람’,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이 남긴 글을 보게 한다.

그렇게 작성된 메시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40여명의 남성들이 관심을 보였다.◆ "차라리..." 두 눈 질끈 감은 A양.. 왜?최근 도쿄의 한 편의점 앞에 앉아 마중 나올 남성을 기다리던 A양은 "지금껏 쌓은 게 전부 폭발해 가출했다"고 말했다.

A양은 초등학교 1학년쯤부터 계부와 친모에게 학대당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부모의 학대는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입학까지 무려 10여년이나 계속됐다.

A양 부모는 정신적, 육체적인 학대를 가리지 않았고 학대는 되레 심해졌다.

피해는 A양 어머니가 남자와 재혼하면서 시작했다.

처음 계부는 ‘착한 오빠’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계부와 어머니의 학대로 A양은 웃는 날보다 우는 날이 더 많았다.

폭언과 폭력에 시달린 A양은 ’기면증’이라는 수면장애가 생길 정도로 학대 당했다.

또 부모 심기에 거슬린 행동을 한 날이면 밥을 주지 않아 굶어야만 했다.

그렇게 지속한 학대는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다.

A양은 ‘사람이 두려워’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몰랐다.

같은 반 친구들은 이런 A양이 ‘유별나다’는 이유로 따돌림했다.

학교에서도 괴롭힘당한 A양은 고교 1학년을 마치기 전 자퇴했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A양이 아르바이트한 이유는 가족에게 보탬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싶었던 이유가 컸다.

그 어디에서도 도움받지 못했던 A양은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단돈 몇 천엔과 스마트폰을 들고 가출을 결심했다.

가족과 떨어졌다는 행복도 잠시. 사는 곳을 떠나본 적 없는 A양은 얼마 못 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써버려 ‘극한상황’에 내몰렸다.

그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수없이 생각했다.

A양은 "어린 동생 얼굴이 떠올라 차마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범죄자 누나를 둔 동생이 불쌍하다"고 했다.◆한 가정, A양만의 문제라고요?SNS에서 특정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A양처럼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학생의 글이 수없이 나타난다.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 특정 태그는 언급할 수 없지만, 내용은 앞선 A양이 남긴 글과 비슷하고 회신은 남성이 99.9%를 이룬다.

학생도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사람이 남성인 것을 잘 안다.

이에 사정이 급하면 ‘남성만’이라는 단어를 덧붙이기도 한다.

최근에는 소문이 그들만의 공간에 전해지면서 ‘대기남’ 등의 태그도 난무하는 상황이다.

자칫 범죄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학생도 위험은 알지만 도움받기 위해 이를 감수하고, 성인 남성은 학생들의 절박함을 악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가출 청소년들은 "성인 여성이 도움을 준다면 ‘누구나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받는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어른들 말을 가출 후 몸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더 늦게 알아도 될 일들을 어린 학생들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는 점이 안타깝다.◆"가출, 현실에서 나를 해방할 유일한 방법"사실 SNS는 A양에게 마음 속 고민을 털어놓을 유일한 공간이었다.

SNS는 가출 후 자신을 가두는 공간이 되어버렸지만, A양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또래와 맘 편히 얘기할 수 있던 곳"이라고 말한다.

A양은 거리에서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즐겁게 떠들며 웃는 모습이 가장 부럽다고 했다.

A양은 원했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양은 지금 한 여성의 도움으로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도움의 손길을 건넨 여성은 "비 오는 날 감기라도 걸리면 마음이 편치 않다"며 집에 머물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러면서 A양 부모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고, A양이 혼자 힘으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로 돕기로 했다.

A양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바쁘게 살아 앞날은 모르겠다"며 "18살이 되면 작은 방을 빌려 혼자만의 생활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A양과 비슷한 사정을 가진 학생들이 보호소 등의 시설을 멀리하고 거리를 떠도는 이유는 언젠가 학대 가해자인 부모에게 돌아간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부모(친권자) 요구에 따라 강제 퇴소하여 집으로 보내지는 이유도 있다.’학대 부모를 신고하라’는 말에는 다소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래도 ‘낳아준 부모’라는 이유에서다.

가출 청소년들은 가출 등 안타까운 선택을 두고 ’현실에서 나를 해방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학대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이 가출을 대신할 무엇인가가 지금 일본 사회에 절실해 보인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