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막가파식 비리 백태 / 회원들에 연간 20만원 회비 걷고 집회 불참땐 10만·100만원 벌금 / 국회 교문위원장에게 뇌물 주기도 / 도의원까지 구워삶아… 감사 방해 / 원장들 기초·광역의원까지 진출 / 박용진 의원 “위세 대단… 무섭다”"맞아요. 솔직히 잘 몰라서 덤볐습니다.사립유치원 원장들 힘이 이렇게 대단한지 미처 몰랐어요."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온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푸념은 괜한 엄살만이 아닌 듯했다.

박 의원은 18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정치인은 표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라며 "정말 무섭다.그들의 위세를 매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실감한다"고 토로했다.

수천표 차이로 당락이 갈릴 수 있는 국회의원 입장에서 지역사회의 ‘빅마우스’인 유치원 원장들과 ‘척’을 지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는 하소연처럼 들렸다.

최근 한 라디오방송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이덕선 비상대책위원장에게서 "박 의원이 국회 교육위원 된 게 이제 3개월"이라는 훈계조 충고를 들은 박 의원은 이 같은 소회를 밝히면서도 유치원 비리 해결을 위해 끝까지 가보겠다고 다짐했다.

박 의원이 약 270억원대 비리를 저지른 전국 1878개 유치원들을 실명 공개한 이후 ‘한유총의 실권(實權, 실제로 행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유총, 골드바 뇌물 제공 의혹정치권과 교육계 인사들은 한유총이 그간의 집단휴원과 공청회 방해 등 ‘막가파식’ 실력행사와 수백억원대 공금 횡령과 같은 비리행위를 저지른 데는 그만큼의 정치적 영향력과 로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거성 전 경기도교육청 감사관은 한유총의 힘이 돈과 입김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김 전 감사관은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대표로 활동했던 시민감사단과 함께 2015∼2017년 경기 도내 사립유치원들 감사를 진행했다.

그는 "한유총은 회원들로부터 연 20만원 정도의 회비와 세미나·토론회 등 각종 명목의 참가비를 걷는다"며 "한유총이 주최한 집회에 불참할 경우 10만∼100만원의 벌금까지 받는다"고 전했다.

한유총 법인 지도·감독권을 가진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한유총 회원(설립자·원장으로 자격 제한)은 지난해 말 현재 3548명이다.

한해 회비로만 7억원의 ‘실탄’을 확보하는 셈이다.

김 전 감사관은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이해관계자들에게 ‘골드바’ 같은 뇌물을 주거나 정치권에 대한 입법로비를 위한 후원금을 내는 데 쓴다"며 "감사에 걸리면 몇억원을 토해내야 하는 유치원장들 입장에선 수백만원의 뇌물은 ‘남는 장사’인 셈"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은밀한 금품’이 오간 사례가 적지 않다.

2013년 9월 신학용 당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출판기념회 찬조금 명목으로 한유총으로부터 3060만원의 입법로비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7월 최종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유총은 애초 ‘쪼개기’ 후원을 제시했다가 ‘후원금보다는 찬조금 방식이 낫겠다’는 신 전 의원 보좌관 조언에 따라 한유총 자금 및 각 지부 갹출금을 모아 건넸다.

◆한유총, 회유·압박 로비 만연야당 의원실 A보좌관은 한유총의 정치권 로비력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극성맞고 치밀하다"고 전했다.

그는 "몇해 전 ‘유치원 재무회계 준칙’이 논란이 됐을 때 한유총 쪽에서 말씀드릴 게 있다고 먼저 연락을 해 와 10여차례 만난 적이 있다"며 "고문 변호사를 대동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의 법령 개정안까지 내미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유총은 여의도에서 ‘입법로비’ 대상 의원 측이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 여러 루트를 통해 다양한 회유와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A보좌관은 "지역의원들부터 내밀한 후원자, 동료 의원들까지 나서 ‘잘 좀 검토해봐라’는 연락이 온다"며 "그래도 난색을 표하면 돌변해 ‘이것 안 해주면 다음에 당선될 것 같으냐’는 식의 협박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한선교 의원은 10년 전쯤 한유총에 당한 일을 떠올리면 아직까지 헛웃음이 나온다.

한 의원은 2009년 국공립 유치원 증설을 내용으로 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가 한유총 측의 조직적인 반발과 항의로 곤욕을 치렀다.

또 다른 야당 B보좌관은 "지역 다선의원일수록 유치원 원장들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귀띔했다.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이야 그 부담감이 덜할 수 있으나 지역구 의원은 지역 유지로서 각계각층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유치원 원장들 요구를 무시하긴 힘들다는 이야기다.

B보좌관은 "이들에게 입당원서를 부탁하면 며칠 사이 수십명 것을 받아온다"며 "적극 옹호하는 것은 그렇지만 웬만하면 적으로 만들지는 말자는 게 의원들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전 감사관은 "유치원장들이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몰라도 도의원들이 피감 유치원들 주장과 논리를 그대로 대변하며 감사팀을 깰 때가 많았다"고 떠올렸다.

실제 지난해 7월 감사 관련 조례 개정을 위한 경기도의회 회의록을 보면 "사립유치원 대다수가 다 생계형 유치원이다" "‘사립유치원을 없애려고 (감사)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등 노골적으로 사립유치원을 편드는 도의원이 많았다.

지역사회에서 쌓은 영향력을 발판으로 유치원 원장들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든 경우도 상당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광역·기초의원 가운데 전·현 사립유치원 원장·설립자는 14명, 민간어린이집 출신은 47명이다.

민주당 C보좌관은 "유치원교사들이 원장 눈밖에 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더 이상 취업할 수 없는 것처럼 정치인도 한유총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며 "여당 의원들마저 박 의원의 용단에 적극 박수를 보내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